내가 애정하는 시 5
북강변
이병률
나는 가을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길을 잃고
청춘으로 돌아가자고 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한밤중의 이 나비 떼는
남쪽에서 온 무리겠지만
서둘러 수면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당신 마당에서 자꾸 감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팔월의 비를 맞느라 할 말이 많은 감이었을 겁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감을 따서 한쪽에 쌓아두었더니
나무의 키가 훌쩍 높아졌다며
팽팽하게 당신이 웃었습니다
길은 막히고
당신을 사랑한 지 이틀째입니다
내가 주로 시를 읽을 때를 생각해 보면, 마음이 퍽퍽하고 어떤 일에도 기쁨이나 만족을 느끼지 못할 때인 것 같다. 이병률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끌림>>이라는 그의 여행 산문집을 통해서였다. 그냥 글 잘 쓰는 산문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토록 내가 원했던 라디오 작가였고, 더 알고 보니 시인이었다.
이 시는 그의 2013년 시집 <<눈사람 여관>>이라는 책에 실려있다. 제목에 이끌려서 시집 코너에 서서 단숨에 시 몇 편을 읽어 내려갔는데, 고민할 것 없이 계산대에 가서 값을 지불하고 또 한 권의 시집이 내게로 왔다.
<<눈사람 여관>>은 문학과 지성사의 시선집 시리즈로 출간됐는데, 내가 이 시선집을 좋아하는 이유 그대로... 문학을 추구하면서 지성과 감성이 동시에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이 시인을 만나보고 싶다. 그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대화하고 싶다. 여행, 삶, 아픔, 사랑 네 가지에 대하여.
'당신'에게 '나'는 가을이 좋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계절에 대해 말한다는 건, 서로를 알아가는 첫 단계 대화. 그런 설렘과 기대감과 흥분이 이 시의 전반적인 흐름인 것 같다. 청춘으로 돌아가자고 하려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만두는, 한밤중에 날아든 나비 떼를 무조건 이해하려 하는, 감을 따서 쌓아두었더니 나무의 키가 커졌다고 팽팽하게 웃는 '당신'을 보며 '나'는 결국 사랑에 빠진다. '길은 막히고/ 당신을 사랑한 지 이틀째입니다' 이런 게 바로 심쿵이지. 시집을 읽다가 심쿵하는 느낌. 이틀째라는 말이 저렇게 설렐 수가 있다니.
예전에는 우울할 때, 버스를 타고 모르는 동네에 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해가 질 때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습관이 있었다. 이제는 낯선 동네를 탐험하는 습관은 없어졌지만, 시를 읽고 글을 쓴다는 게 나에게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안에 얽히고설킨 것들을 배설하는 작업. 은근한 희열과 즐거움이 있다. 우울할 땐, 시를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