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정하는 시 3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
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내가 애정하는 시인 베스트 3에 드는 사람. 윤동주. 1917년 생인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에는 영화 <동주>가 개봉하기도 했다. (강하늘 좋아해서 본 거 절대 아님) 윤동주는 워낙 유명한 시인이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름 밑에 바로 나오는 소개는 '근현대사 인물'.
윤동주는 일제강점기를 시인으로 살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어둡고 가난한 생활을 했지만, 그 속에서 조국의 현실을 누구보다 슬퍼하고 나라의 독립을 염원한 시를 썼다. 그의 대표 시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또 다른 고향> 등을 읽어보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정도로 그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동주는 조국이 독립을 하던 1945년에 광복을 6개월 앞둔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알 수 없는 주사들을 오랜 기간 맞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스러졌다.
이런 그였기에, 1939년에 쓰인 그의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보이는 그의 올곧고 바른 품성과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식민지 현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시 밖에 쓸 수 없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비관하던, 강직하고 고결한 성품을 가진 동주.
그의 시는 주로 조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서정시와 순수시가 많은데, <자화상>이라는 시에서는 우물 속에 비친 달과 구름과 하늘, 그리고 파아란 바람이 부는 가을을 그리고 있다. 시어의 나열만으로 이렇게 완벽하게 가을의 스산함을 표현해낼 수 있다니, 타임머신이 있다면 나는 윤동주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우물 안에는 가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나이도 있었다. 보면 미워져서 돌아가는, 하지만 다시 가여워지고 그리워져서 돌아오는 사나이.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미움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하던 윤동주. 그 시절에 무엇이 그를 이토록 번뇌하게 만들고 성찰하게 만들었을까. 당시 조국이 처한 현실이 식민지였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는 자기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늘 정결하고 깨끗하게 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이 그의 시를 이렇게 힘 있게 만든 게 아닐까.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를 이렇게 평가했다. '동짓달에도 꽃과 같은, 어름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시인'. 깊고 어두운 밤이 지속되고, 모든 것이 얼어버린 차가운 세상에 굴하지 않고,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순수와 진실을 외치려 애를 썼던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의 삶은 짧고 고단하고 슬펐다. 아무도 알지 못하던 젊은이였지만 죽음 이후에 위대한 시인이 되었고, 그의 시는 영원히 빛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알까? 세상은 그를 버렸지만 버려진 것이 아니었고,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을 가졌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