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정하는 시 1
생활과 예보
박준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박준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시집을 고를 때, 먼저 시집의 제목을 보고 이 시집이 대충 어떤 분위기겠구나, 시인이 지금 뭘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짐작해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집은 그 책에 수록된 대표 시를 제목으로 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집의 제목과 똑같은 시를 본문에서 찾아 읽어본다. 박준의 시를 읽은 후, 내가 느낀 감정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해내다 못해 삼킨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시인을 좋아하게 됐다.
지난 1월, 1호선 동묘 앞 역에서 지하철을 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승강장 스크린쿼터에 <생활과 예보>라는 박준 시인의 시가 적혀 있었다. 찾아보니 <생활과 예보>는 그의 또 다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수록되어 있는 시였다. 2연 4행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지만, 그 네 줄이 나에게 주는 임팩트는 강렬했다.
마루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는 오늘뿐만이 아니라, 어제도 내일도 그렇게 마루에 앉아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또 해가 지는 풍경들을 늘 보고 계셨을 거다.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생활.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꼭 아무 일도 없다고 볼 수 없는, 이미 반 백 년을 훌쩍 넘기고 이마에 수많은 인생의 굴곡들을 남기고 오늘날을 사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입밖에 내신 말씀은 정시가 되면 딱딱 시간 맞춰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 후, 정제된 어투의 아나운서가 전하는 일기예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이었다. '비 온다니 꽃 지겠다'.
비가 오면 꽃이 지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일이 많아지신 아버지가 말을 아끼다 아끼다 터트리듯 꺼낸 데는 더 깊은 뜻이 들어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는 거다.
비가 오고 나면 예쁘고 화려하게 피어있던 꽃들이 고개를 떨구고 다 져버리는, 그 쓸쓸하고 처참하고 황량하기까지 한 풍경이 아버지는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이 서러운 인생을 살아 내면서, 얼마나 많은 인생의 꽃들이 빗방울에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리는 것을 견디셨을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가끔은 엉엉 울음을 풀어내고 싶은 순간이 있는 것처럼, 아버지는 울고 싶을 때 어디에 가서 우셨을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박준 시인의 산문집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