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 이문재

내가 애정하는 시 9

by 유작가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농담>은 이문재 시인의 <<제국호텔>> (문학동네, 2004)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다. 이 시를 처음 읽은 게 어디서 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집의 출간 연도는 내가 고3 수험생이었을 때다. 팍팍하고 불안한 미래를 앞둔 당시 나의 유일한 낙은,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주말마다 서점에 가서 수능 대비 문제집을 고른 후에 꼭 소설책이나 시집 코너를 기웃거리며 메마른 감성을 채웠던 것이었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시가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아서, 가끔 툭! 하고 물속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피어올랐다.


당신은 노을이 지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과, 혼자 먹기에 너무 아까울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눈 앞에 두고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아무도 떠오르지 않거나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할 사람이 없는 사람은 정말 외로운 사람일 거다. 아니면 이 시에서 말하는 대로 정말 강한 사람이거나.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수많은 비유와 언어, 감정, 느낌들이 있지만 아름다운 것을 마주쳤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시인의 친절하고 상냥한 마음이, 처음 이 시를 읽은 나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을 누구보다 편하게 여기는 나도, 사실은 혼자 있는 게 너무 싫을 정도로 덜컥 마주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앞에 어찌할 바 모르는 당황함을 시인에게 딱 들킨 느낌.



종소리를 멀리 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종소리의 깊고 진한 울림은 종 혼자서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진동시키는 종메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제 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충격과 고통을 알면서도 부딪히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고요하면서도 웅장한 종의 소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keyword
이전 08화갈대 / 신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