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져서 떠났다가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어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쳤다. 2016년 2월의 어느 날 새벽 2시경. 자정에 탔어야 했던 비행기가 중국 상공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를 그 순간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몸이 먼저 발견해 영혼에 기별을 해준 듯, 알아차림은 몇 초 후에 일어났다. 나를 향한 증오와 분노에 못 이겨 있는 힘껏 이마를 내리쳤다. 아프기는커녕 여전히 꿈이길 바라는 마음에 기가 찼고, 분이 다시 올라왔다. 머리를 한 대 더 세게 내리친 후 조각난 정신을 그러모았다. 항공사 고객센터 채팅 상담에 접속해 제발 돌아오는 항공편 만은 살려주십사 빌고 또 빌었으나 소용없었다. ‘규정 상 어쩔 수 없습니다’란 말이 이토록 매정하게 들렸던 적 있었나. 직항 왕복 티켓을 특가로 샀다며 며칠간 즐거워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했다. 상할 대로 상한 기분을 어찌할 길이 없어 유치 찬란한 심술만 부렸다. 항공사 계정에서 탈퇴하겠다는 선언. 기별도 가지 않을 이 소심한 복수로 얻은 건 자괴감뿐이었다.
여행이고 뭐고 포기하고 쭈그려 있고 싶은 마음 반, 빠르게 잊고 털어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혹여 온 우주가 내 여행을 반대하는가 싶어 서운했다. 이마와 머리를 계속 내리칠 순 없으니 타격감 없을 우주라도 원망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잠을 잘 자격이 없는 죄인이란 생각에 침대를 떠나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항공사 사이트에 접속해 암스테르담행 다음 비행 편을 검색했다. 그날 밤에 출발하는 상하이 경유 출국 편과 동일한 날짜로 귀국할 수 있는 직항 편이 있었다. 가슴은 터져버릴 듯 쿵쾅 거리기 시작했고, 심호흡과 격렬한 손떨림 끝에 티켓을 샀다. 뇌에서 이성의 회로를 닫고 감정의 회로만 열어두었다. 연이은 두 번의 항공권 구매는 인생 수업료를 낸 셈 친다 해도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저렴하게 구매한 검은색 캐리어는 거의 다 채워진 채로 열려 있었다. 짐 싸는 건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했었나 보다. 짐을 마저 싸고 나서 평소와 다르게 빠뜨린 건 없는지 두세 번 더 체크했다. 역시 고난은 축복인가. 잠시나마 꼼꼼한 사람의 페르소나를 써본 것. 야릇한 죄책감이 계속해서 밀려왔지만 애써 무시한 후 잠을 청했다. 서너 시간 지났을까 싶었는데 깨고 보니 겨우 한 시간이 지났다.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몽롱함 가운데 불안이 엄습했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 날 믿으면 안 돼’. 이렇게 자고 깨기를 반복하다가 또 비행기를 놓칠라 싶어 벌떡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날이 밝을 무렵 인천공항발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도심공항터미널로 향했다. 안도감이 들었지만 설렘은 아직 사치였다. 뻥 뚫린 올림픽대로를 신나게 달리는 버스처럼 내 마음도 시원하면 좋으련만 큰 지출의 쓰라림은 계속해서 잠을 방해했다.
9시간 동안 공항에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두근거림의 장소여야 마땅한 곳인데, 공항과 나 사이 쌓아온 유대와 추억을 망쳐 버린 것 같았다. 대한민국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던 월드컵의 해 2002년 여름 첫 유럽행에서 경험한 최대 공항 체류 시간은 7시간이었다. 당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엔 온갖 재미난 게 많았던 데다가 혼자가 아니었기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기록 경신이 이토록 기쁘지 않을 줄이야. 하지만 계속 못난 생각에만 빠져있을 순 없었다. 신속하게 ‘기분 전환’을 해야 한다는 본능에 힘입어 일단 친구 은혜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은혜에게는 나의 어리석음을 낱낱이 고하는 고해성사 격 속사포 랩을 뱉어냈고, 엄마에게는 담담한 척하며 팩트만 전달했다. 무척 의지하고 사랑하는 두 존재지만, 둘은 꽤 다른 유형의 사람들인데 반응이 같았다. “그게 뭐 대수냐, 건강히 다녀오라.” 고백은 현명한 판단이었고, 기분은 더디지만 회복세를 탔다. 물론 엄마는 이후 몇 년 간 등짝 스매싱을 시전 하며 여행 좀 그만 다니고 제발 돈 모아 집 살 생각 좀 하라며 성화를 부렸지만.
기분이 나아진 김에 공항에서 크리에이티브하게 놀아보고 싶었으나 수면 부족인 뇌는 단칼에 생각을 거절했다. 커피 마시고, 책 몇 장 읽다가 졸고, 글 좀 끄적이다가 또 졸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결국 몸을 일으켜 하릴없이 여기저기를 거닐었다. 걷다 보니 문득 영화 <터미널>이 생각났다. JFK 공항에 도착해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뉴욕 땅을 밟아보려던 차 고국이 쿠데타로 유령 국가가 돼버린 뉴스를 접한 빅터 나보스키. 나라가 없는 셈이 됐으니 돌아갈 수도 없고, 여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니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 상황. 톰 행크스가 열연한 주인공의 절망감에 비할 바가 결코 아님에도 자기 연민에 빠져 공감이 됐다. 정말 주제넘기 짝이 없는 공감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떠오른 영화 생각이 환기가 되면서 공항이란 곳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영화 속 빅터처럼 청소차라도 얻어 타볼까 싶었다. 나름의 유희가 시작된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무려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침대도 아니고 벤치도 아닌, 아무튼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자리가 스무 개쯤 마련돼 있었다. 절반 가량은 이미 외국인 백패커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색다른 풍경이 돼버렸다. 이들은 인천 공항에서 환승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조도가 매우 낮았고, 은은한 볼륨으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아늑한 느낌이 들어 몇 시간 자볼까 싶었지만 포기했다. 혹 피곤함에 코를 골아대며 자고 있는 이들을 방해하면 어쩌나, 비행기를 제시간에 또 못 탄다면 인생 최악의 드라마를 찍는 건 아닌가 등등의 온갖 잡생각에 사로 잡혔던 것. 덕분인지 때문인지 더 열성껏 돌아다니며 밤비행기에서 기절하기에 제격인 저질 체력을 준비해 둘 수 있었다.
탑승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죄책감과 자괴감은 옅어지고 설렘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이래도 되나 싶어 괜히 머리를 긁적긁적. 인간의 망각이 특정 상황에선 만병통치약일 수 있더라. 잃어버린 돈, 아니 날려버린 돈과 9시간 동안 축적한 육체적 피로는 흡사 면죄부를 산 것만 같았다. 아무렴 어떠하리, 결단했으니 가야만 하는 것을. 찰나의 결의가 묘하게도 나를 위로했음을 깨달았다. 탑승구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예약해둔 암스테르담 호텔에 이메일을 보냈다. 비행기를 놓쳤지만 바로 다음 비행기로 갈 예정이니 나를 기다려달라는, 어지간히 처연한 메시지를 보냈다. 결제를 완료해둔 내 방은 그대로 거기 있을 테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낀 이번 여행엔 그 어떤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드디어 탑승을 했고, 환승을 위해 상하이 공항에 머무는 동안 호텔에서 답장이 왔다. 날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조심히 오란다. 당연해 마땅한 환대에 또 위로를 받았다.
그저 공항에 몇 시간 머물러 본 게 전부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하이라니? 신선했고, 흥미진진했다. 삶이 과연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실수 한 번이 나를 상하이로 이끌었다면, 또 다른 실수는 과연 나를 어떤 모험으로 인도할까? 하지만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궁서체). 호기심을 자극하는 철학적 사색에 좀 잠겨 보려니 알랭 드 보통의 책 <공항에서 일주일을>과 추억이 깃든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랐다. 꽤 오래전 당시 가깝게 지내던 후배와 두어 달간 주말마다 만나 여행 이야기를 열띠게 나눈 적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이 책을 만났고,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어느 여름날 인천공항으로 무작정 향했다. 뒤늦게 찾아든 민망함에 공항철도를 타보고 싶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목적 없이, 즉흥적으로 공항에 가본 생애 첫 경험이었다.
드 보통의 책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강렬한 잔상이 하나 있다. 비행기 연착륙을 원하지 않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비행기가 늦어지길 원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야 공항에 더 머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엔 그저 새로운 관점을 가진 철학자 다운 사람이란 생각만 스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인천에서도 상하이에서도 공항에 오래 머물다 보니 그의 문장을 몸으로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끝이 정해져 있는 자유 시간 동안 다양하고 풍부한 생각에 빠져볼 수 있던 건 그럴듯한 특혜 같았다. 아울러,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며 비밀을 파헤치듯 인간관계의 다이내믹을 상상해보는 정신적 활동은 무척 즐거웠고 말이다. 일상에서 일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와 강도의 시간이었다.
늦은 밤시간임에도 상하이 공항 환승자들은 남다른 에너지를 뿜어냈다. 대륙의 사운드를 절로 체감했달까. 지칠 줄 모르는 이들의 우렁찬 대화 가운데서 되려 내 마음은 고요해졌다. 그제야 비로소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단 사실을 순수히 기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가 돼버린 못난 실수가 아닌, ‘지금 여기’에 그리고 앞으로의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몸의 균형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난 열몇 시간은 마치 내리막 빙판길을 걷다 못해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주저앉지 않고 기어서라도 꾸역꾸역 내려오다 보니 넘어지지 않고 두 발로 서 있구나 싶었다. 카드를 한 번 더 긁었을 뿐인 이 사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각의 서사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 그렇다, 돈을 잃고 스토리를 얻었다. 마침내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올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 6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다. 24시간을 늦었더니 어찌나 이 도시가 애틋하던지. 초면이지만 발 디딘 순간부터 사랑하기 시작했다. 2월의 새벽바람이 이상하리만치 포근했다. 별게 다 위로가 되네 싶었다. 이방인인 나는 이 도시의 새벽을 깨우리라는 거창한 마음으로 씩씩하게 호텔로 걸어갔다. 실은 소음만 일으켰을 뿐이지만. 10여분 쯤 걸어 호텔 앞에 도착하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새벽녘에 빨간 벽돌의 중앙역이 그윽한 오렌지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가슴 한편이 간질대며 뭉클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진녹색의 카펫으로 뒤덮인 계단이 있었다. 좀 바랜 감이 있지만 그 색이 어찌나 예쁘던지요.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려는 찰나 덥수룩한 갈색 빛깔 수염을 가진 누군가가 도움을 건네왔다. 그는 내게 ‘웬디? 프롬 코리아?’라며 물었다. 미소로 화답하며 눈에서 진한 반가움을 발사했다. 그는 이어 말하길, “환영해요 웬디. 하루만 놓쳤을 뿐이잖아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부디 여행을 즐겨요.”라고 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환영이 있을까?
암스테르담도, 호텔도, 친절한 호텔리어도 다 첫 만남인데 마치 재회한 듯 그리움이 녹아내렸다.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모종의 성취감이 피어올랐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로 점프했다. 샅샅이 뜯어보지 않아도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순간 결심했다. 지금부터 여행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 자신도, 암스테르담도, 이어서 만날 파리도 무조건 사랑하기로. 과거의 과오를 청산한 산뜻한 기분과는 달리 눈꺼풀의 중력은 저항하기 쉽지 않았지만 가뿐하게 극복했다. 몸을 일으켜 호텔방의 여기저기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제 며칠 동안 이곳은 나의 온기와 사색과 이야기로 채워지겠구나 생각하니 두근거렸다. 모든 감각을 일제히 깨워 도시 속으로 들어가 맘껏 누비자며 마음의 옷깃을 여몄다. 여행이란 정말이지 결의와 위로 사이를 줄타기하며 내 혼을 쏙 빼놓는 아름다운 갈등의 대서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