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번씩 튜터링을 진행하면서 깨달은 건, 첫 튜터링 때 전공이 어렵다며 신세 한탄을 했던 한유진은 생각보다 전공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현재 강의를 수강하며 처음 배운 개념이나 정리에 대해서는 이해 속도가 느린 편이었으나,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학생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몰랐다면 튜터링 같은 것도 신청하지 않았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그래서 내가 튜터로서 도움을 제공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되려 튜티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다 보면 이미 배웠던 지식들이 정리되는 느낌까지 드는 지경이었다.
이렇게 건설적이고 호혜적인 시간을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이 어째서인지 불편했다. 마치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물이 차오르는 방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아직까지 물이 얼굴까지 올라오려면 한참 남았지만,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이라는 미래가 그려지기에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지는 그런 상태가 된다. 매번 튜터링 시간이 끝나면 한유진은 꼬박꼬박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세미나실을 나섰다. 그 인사말과 미소가 나를 한층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8년 전 동생의 장례식에서 한유진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과거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비집고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곤 한다.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인사를 받을 때마다 한유진의 입을 틀어막아버리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뿌듯함과 불편함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이전까지 시험 때문에 긴장감이 넘치던 공기가 이윽고 풀어지면서 평균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느슨해진 탓인지 평소 같았으면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대충 때웠을 터인데, 오래간만에 조금 제대로 된 밥을 먹으러 학식으로 향했다가 나와 마찬가지로 혼자 밥을 먹으러 온 한유진과 조우했다. 한유진은 늘 그렇듯 먼저 인사를 하면서 나더러 혼자 왔으면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했고, 나는 속으로 역시 평소처럼 간단하게 때울 걸 그랬다며 후회하면서 한유진의 제안을 수락했다. 식사 도중 한유진은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 그리고 해석학개론 2 중간고사 성적이 꽤 잘 나왔다는 자랑을 늘어놨다. 솔직히 나는 그런 소식들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마치 흥미진진한 영화 줄거리라도 읊는 것처럼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댔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진짜 잘됐지 뭐예요. 제가 교직이수에 관심이 있어서 이번 학기에 지원해 둔 상태인데, 그게 이번학기 성적까지 반영되고 최종적으로 선발되는 거라 이번 학기 학점을 걱정했었거든요. 해개론이 제일 걱정됐었는데 중간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한시름 놨어요.”
“잘됐네. 그러면 임용고시 생각하고 있는 거야?”
“네. 저는 수학 자체보다는 애들한테 뭔가를 가르치는 게 더 재밌어서요.”
“대단하네. 요즘 경쟁률 장난 아니라던데.”
내 말에 한유진은 합격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대화 주제가 자연스레 미래와 진로 쪽으로 바뀌자 그녀는 튜터링 첫날 내가 대학원에 대해 말했던 점을 꺼내 들며 내게 물었다.
“선배는 대학원 갈 거라고 했었잖아요. 어느 연구실로 갈지도 정한 거예요?”
“어. 정수론이 재밌어서 김혁수 교수님 연구실로 가려고. 마침 지금 학부 지도교수님이기도 하니까 컨텍하기에도 수월하고 좋지.”
“저는 튜터도 하시고 하니까 해석학을 좋아하시나 싶었는데 정수론 쪽이었구나. 암호 쪽으로 해보려고요?”
“아냐 나는 좀 순수 이론 쪽을 좋아해서, 응용수학은 별로.”
“하하, 저는 머리 아프게 이론만 나열하는 거보다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점이 좋아서 굳이 말하면 응용이 더 재밌어요. 선배는 언제부터 그쪽 분야에 관심 있었어요?”
한유진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나는 약간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원래 좀 실용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그래. 그리고 대학 오기 전부터 골드바흐의 추측*이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그거랑 관련된 문제를 연구해보고 싶기도 하고.”
“오…. 꿈이 큰데요 선배. 역시 저랑은 수학에 대한 포부부터가 달라요.”
“거창하게 말해서 그렇지 사실 그냥 단순히 짝수를 좋아할 뿐이야.”
“좋아하는 게 있는 건 좋은 거죠. 근데 방금 그 말은 좀 수학 오타쿠 같았어요.”
한유진은 이 말을 하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쓱하게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그냥 단순한 궁금증인데, 왜 하필이면 짝수예요?”
“짝수라고 하면 안정적인 느낌이 들잖아.”
내 말에 한유진은 크게 웃었다.
“에이 홀수라고 뭐 대단히 불안정하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치면 삼각형은요? 종이를 세우고 싶을 때 사각형으로 접는 거보다 삼각형으로 접는 게 더 안정적으로 잘 세워진다고요.”
그것 참 신선한 접근법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짝수를 좋아하는 것에도 논리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니까 동점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기하학과 정수론의 차이에 대해 설파하면서 종이로 도형을 접어서 세우는 일과 숫자가 갖는 의미는 서로 관련이 없다며 그녀에게 반박했다. 그 후로 우리는 실상은 바보 같은 농담을 주고받을 뿐인데도, 겉보기엔 심각한 회의를 하듯이 서로 궤변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벌어진 식사 자리는 어영부영 끝이 났다.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s conjecture) :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개의 소수(Prime number)의 합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수학의 미해결 된 문제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