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11

by 이은주

12
인혁은 내내 자는 듯 했다. 나는 A.J 크로닌의 책을 읽고 있었다. 선교사의 이야기였는데 교회 건물로 쓰였던 헛간에서 읽다니 의외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집중해서 읽는 동안 오후의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보트를 반으로 나누었다. 보트의 이쪽과 저쪽은 너무나 다른 세계인 것처럼 나뉘었다. 스타워즈의 검으로 단번에 자른 것 같았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인혁은 낮에 아껴둔 에너지를 역할놀이에 쓸 모양으로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나도 비스듬히 누워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바로 앉았다. 인혁이 기지개를 켜고 보트에서 나와 헛간을 어슬렁거리며 가볍게 스트레칭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가 가까이 왔다. 내쪽으로 와서 허리를 숙이며 내 머리에 가볍게 입맞춤하는 시늉을 했다. 이것은 준비되었으니 역할놀이를 하자는 신호였다.
내가 말했다.
“아빠, 놀아주세요.”
“아빠, 아빠 인형이 가지고 싶어요.”
인혁이 목소리를 가다듬는데 나는 벌써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에헴.. 인형? 우리 연희 인형이 가지고 싶어?”
“네, 아빠 친구들이 가진 마로니 인형이요. 노란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자랐고 드레스를 입은 마로니 인형이 가지고 싶어요. 소영이도 가지고 있고, 혜란이도 가지고 있는데 저만 없어요.”
인혁은 뚜벅뚜벅 걸어가서 인형놀이를 하다 실패하고 던져버린 먼지떨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숱이 많은 여자의 머리카락 같은 먼지떨이를 하나로 묶었다. 먼지떨이의 술과 나무막대를 잇도록 꽁꽁 묶은 붉은 테이프가 얼굴 모양이 되자 나에게 건넸다.
“아빠가 다음에 마로니 인형 사줄게. 돈 많이 벌어서 두 개 사줄게. 오늘은 아빠가 만든 이 인형을 가지고 놀아라.”
“좋아요. 아빠. 저는 착한 아이니까. 오늘 수학시험 봤는데 저 백점 맞았어요.”
“그래? 굉장하구나. 우리 연희는 아빠를 닮아서 머리가 좋은데. 배고프지? 밥 먹어야지?”
“네. 배가 많이 고파요.”
“뭐 먹을까?”
“돈까스? 돈까스 먹을래?”
“아니요. 떡볶이가 먹고 싶어요. 친구들이 학교 앞에서 사먹는 떡볶이가 먹고 싶었어요.”
“그래. 그럼 떡볶이를 먹자.”
인혁이 포크로 정성스럽게 떡을 찍어 내게 먹여주는 역할에 몰입해 있는 동안 나는 한참 인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울퉁불퉁한 힘줄이 솟은 팔뚝을 잡았다.
“고마워.”
보트에 앉아서 한손에는 먼지떨이를 든 난 또 한손으로는 보트 밖에 서있던 인혁의 팔뚝을 잡고 있어서 엉거주춤 균형을 잃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중심을 잃자 인혁이도 한손으로 보트를 짚은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고맙긴. 사람 하나 살리는 게 내 꿈이었어.”
그리고 어색한 듯 저벅저벅 걸어서 보트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우리는 오래도록 눈싸움을 하듯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깊은 어디쯤에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꿈이 있었던가. 어쩌면 그는 의사가 되어 아픈 몸을 치료해주고 싶었던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멀리 이름 모를 새가 울고 있었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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