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10

by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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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트를 호수에 띄우는 것만큼은 위험할 것 같아서 응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별자리 여행은 보트에 누워서 관람하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새벽에는 역시 한기를 느껴 몸을 한껏 움추린 채 옆으로 누워있었다. 인혁이도 보트 반대 방향에서 잠이 들어있다 추위에 깨었는지 부스럭 소리가 났다. 헛간의 천장을 닫기 위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내게 다가왔다. 추웠고, 마침내는 나도 모르게 떨고 있었다.
천장을 닫자 헛간 안은 캄캄해졌고 그가 내 등뒤로 와서 천천히 몸을 눕히는 걸 느꼈다. 그의 체온으로 곧 따스해졌다. 새벽에 호수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을 것이었다. 멀리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두부장수의 종소리와는 달리 마을 전체로 눈가루처럼 퍼질 것이었다. 나는 잠이 달아난 채 언제 일어날지 망설이고 있었다. 잠시 후 잠든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도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아주 잔인한 장면을 보았는데 바로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신음소리는 내지 않았다.
날이 밝아오자 나는 인혁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헛간을 빠져나왔다. 배낭에는 어제 하숙집에서 들고 나왔던 플라스틱 빈통이 들어있었다. 하숙집 아줌마를 만나면 곤란하니까 도서관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도서관에서 엎드려 잠을 잔 다음 다시 10시쯤 하숙집에 들어갔다. 역시 주인아줌마는 외출하고 없었고 식탁에는 깻잎 반찬과 달걀말이와 콩자반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플라스틱 통에 밥과 남은 반찬들을 담고 내 방에 들어가서 전공서적 몇 권을 들고 나왔다. 이 정도면 새 책을 한 권 살 정도로 헌책방에서 값을 쳐줄 것이었다. 독일에 가서 쓰려고 바꾸어둔 달러는 손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당분간 쓸 생활비가 대체 얼마나 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인혁의 담배를 사서 헛간으로 돌아왔으나 어제처럼 기타를 치지는 않았다. 그의 기타소리를 내심 기대하고 왔던 나는 아쉬웠다.
그는 벌써 깨어서 전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아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어제와는 다르게 말이 없었다. 조금 아파보였다. 나는 그의 앞에 하숙집에서 가져온 플라스틱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보트로 돌아와 도서관에서 빌린 A.J 크로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뭐야. 혼자 책을 읽는거야. 난 이렇게 열이 나는데?”
내가 말이 없자 그가 계속 말했다.
“난 너에게 우주를 보여주기 위해,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신비한 세계가 많으니 힘을 내서 이 나라를 떠나라는 뜻에서 추운 것도 모르고 서비스를 했는데 책이 눈에 들어와?”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서 배낭을 뒤졌다. 며칠 전 사둔 진통제겸 해열제를 두 알 그에게 건넸다.
“먹어. 열이 내릴거야. 그리고 보트가 바닥보다는 나을거야.”
그는 물과 함께 약을 삼키더니 순순히 보트로 와 앉았다.
“난 네가 부러워. 곧 이 나라를 떠날 테니까.” 그가 처음으로 날 보지 않고 외면하며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의 목젖이 움직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얘기 했지? 아버지가 아프셔서 한해 꿇었다고. 우리 집은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해.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쉬어본 적이 없어. 계속 돈을 벌었지. 새벽에 인력시장을 가면 얼마를 버는 줄 알아? 그리고 그 돈을 사람들은 어떻게 쓰게? 일이 고되니까 대부분 저녁이면 소주나 막걸리로 버티고는 해. 곤죽이 되어서 들어가 자는거지. 술을 안 마실 수 없느냐고? 웃기지마. 근육통으로 잠이 어디 쉽게 오는 줄 알아? 이리저리 뒤척이다보면 벌써 일하러 나갈 시간이라구. 그래서 술을 마셔야지 쓰러져 잠이 드는거야. 난 이런 삶이 싫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대학은 다녀서 뭐하게. 그 다음은 직장에 다니고, 그 다음은 결혼을 해서 집을 사야하는 궤도에서 벗어나면 이 나라에서 행복할 수가 있을까? 나는 행복해도 사람들은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할걸. 네가 말하는 악몽을 나는 눈을 뜨고 살아내야해. 고향에는 아픈 아빠가 있지. 아빠를 돌봐야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공부는 해서 뭐하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답이지 마음을 먹고 잠들지만, 막상 아침이 오면 또 수업을 받고 있거든. 고향에 내려가도 일할 곳이 없고, 먹고 살길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니까.”
나는 모른다. 한번도 가족다운 가족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가 하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나도 아픈 기억만 있는 이곳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테니까.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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