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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파묻었다.
“악몽을 꾸고 다시 잠이 안 오면 자려고 애쓰지 마. 낮에 시간을 내서 자면 돼. 자려고 애쓰니까 옅은 잠에 빠져서 가위눌리는 거야. 차라리 음악을 들어, 빗소리를 듣고 물소리를 들어. 녹음기 앞면을 다 빗소리만 녹음해두었다가 이어폰으로 들어봐.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의외로 마음을 편하게 할 거야. 냇물 흐르는 소리도.. 시간이 나면 소리를 채집하러 다녀도 좋을거야. 이곳을 떠나서 그곳에서도 악몽을 꾼다면 말이지.”
인혁이 자기 이야기에 빠져서 혼자 여러 가지 제안을 하는 동안 정말이지 나도 그의 말에 따라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꿈을 꾸게 되었다. 새들, 바람소리, 대나무숲 소리, 자갈밭을 걷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 헛간은 이래봬도 교회로 쓰기 위해 외국인 건축가가 지었다고해.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 집안이었던 경비아저씨가 알려주셨어. 밤이 되면 저 줄을 잡아당겨서 천창을 열 수 있지. 비스듬히 열리기는 하지만 맑은 날은 별자리를 볼 수 있어. 아니 아예 이 보트를 호수에 띄우자. 호수 안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 아주 예쁠 거야.”
그는 자기가 한 말을 되씹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말이 나와서 아차 싶었는지도 모를 달콤한 언어들은 이미 주워 담을 수 없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여학생이 왕자님을 꿈꾸듯 남학생도 예쁜 공주님을 꿈꾼다는 것을 인혁의 생각에 잠긴 검은 눈동자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가 지자 그는 보트 안에서 풀던 십자말 풀이집을 내려놓고 헛간 구석으로 다가갔다. 그가 줄을 잡아당기자 천정과 벽사이에 나무판자가 주름처럼 접히면서 밤하늘을 드러냈다.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별세계로 순간 이동하는 착각을 일으키도록 수많은 별들이 헛간 안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보트에서 목을 움츠렸다. 아이처럼 환호하면서.
그날 밤 그의 호의가 빚은 별자리 여행은 훗날 <학대를 받은 아동이 자라서 부모교육, 부모훈련을 받은 경우와 받지 않은 경우 어떤 결혼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우리는 잠시 보트 안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한없이 아름다운 것들로 인해 존재가 성숙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도 어쩌지 못한 분노에 또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이 음악일 수 있고, 아름다운 별자리 여행일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보여준 날이었다. 둘째 날 밤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