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7

by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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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어나서 일단 몸을 씻기 위해 하숙집을 향했다. 하숙집 아줌마는 콩나물국과 멸치볶음이며 김부각 등을 식탁에 차려둔 채 벌써 외출을 하시고 없었다. 부엌 곁에 난 작은 방이 내 방이었다. 다른 방보다 쌌지만 부엌에서 아침 준비하는 소리와 설거지 소리를 그대로 들어야했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손목시계를 찼던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만져본다. 그리고 후회를 한다. '역시 시간 같은 건 타인에게 맡기는 게 아니었어. 찾아와야지.'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플라스틱 통에 밥과 김치와 멸치볶음을 담았다. 보온병에 물도 담았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전공서적 사이에 숨겨둔 돈을 꺼냈다. '구두를 사신고 싶었는데.' 눈을 질끈 감고 구두 같은 건 처음부터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린다. 헛간으로 돌아가기 전 그의 손목시계를 맡기고 내 시계도 찾을 겸 전당포 계단을 올랐다. 전당포 주인은 나를 알아보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금방 내 손목시계를 꺼냈다. 다음은 그의 손목시계를 맡길 차례였다. 청바지 주머니에서 손목시계를 꺼내자 그가 반갑다는 듯이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인혁이 시계잖아. 뭐야, 이젠 친구까지 시켜서 시계를 전당포에 잡히는 건가. 나 원참.” 전당포 주인이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지폐다발을 꺼내고 있을 때 손목시계를 쥔 채 그대로 전당포 계단을 달려내려왔다. 내가 담배 한 갑을 사고 가판대에서 십자말풀이 한권을 사서 헛간으로 돌아오는 길 아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헛간 앞에 오자 안에서 기타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인혁이라는 남자의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노래가 아니라 시낭송에 가까웠다. 마침 대학가요제 노래가 나와 나는 헛간 앞에 그대로 주저앉아 노래를 듣기로 했다. 호수를 향한 채 헛간 벽에 기대앉은 난 어제부터 계속되었던 허리 통증에서 잠시 놓여난 기분이 들었다. 노래는 계속되고 노래는 주문이 되어 나를 순하게 길들였다. 이 음악이 끝나면 인혁이라는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주자. 그렇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길은 험하고 비바람 거세도 서로를 위하며 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리. 이 세상 모든 것 내게서 멀어져가도 언제까지나 너만은 내게 남으리.’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통기타도 끝없이 연주되었다. 나는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느 순간 헛간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고, 들어가서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으며, 이젠 됐으니 집으로 가도 좋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바람과 구름’‘구름과 나’를 들으며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았다. 찔끌찔끔 눈물이 나왔다. 미래 나는 어떻게 될지 한없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때 호수 저편에 사람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헛간 벽에 주저앉아 있던 나는 풀숲으로 잠시 피했다가 아차 싶었다. 기타소리를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헛간에 뛰어 들어가자 그는 놀랬다. 그가 놀라서 기타연주를 멈추자 나는 낙심과 후회의 감정이 드는 것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말았다. 그의 손을 거칠게 잡아서 기타연주를 못하도록 묶어버렸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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