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12

by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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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외롭고 힘이 들 때는 어떻게 해요?”내가 보트에 마주 앉은 인혁이에게 다시 물었다. 방금 보트에 들어와 앉았던 인혁이 다시 일어나서 헛간 구석으로 다가가 어젯밤처럼 천창을 열자 권청색 하늘 위로 옅은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천창을 열어놓은 채 인혁은 보트 안으로 들어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는 곡도 있고 모르는 곡도 있었다. 아니 대부분 모르는 곡이었다. 나에게는 티브이도 없고, 티브이를 볼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 학기 과수석을 놓치지 않으려면 밥 먹는 시간 이외에는 도서관에 박혀 있었고 가끔 라디오를 듣는게 다였으니까.
그가 기타 연주를 마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연희야 아빠는 세상살이가 힘들거나 그럴때면 이렇게 기타를 치면서 위로를 받고는 해. 음악으로 세상을 건너는거지. 연희 너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지? 어렸을 때 배운 노래라도 좋아. 그 노래로 세상을 건너도록 한번 해봐.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아빠가 곁에 있다고 생각해봐. 세상에서 버림받고,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때 단 한 사람 아빠가 널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다른 사람 다 나를 미워해도 너를 믿어주는 아빠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알겠지?”
“알겠어요.”
“밤이 너무 깊었어. 이제 자는 게 좋을 거야. 어서 자.”
“아빠, 잠이 안 와요.”
“아빠가 노래불러줄게.”
인혁은 보트 밖으로 나가 배편에 걸터앉아서 내 잠자리를 봐주듯 내쪽으로 기울인 다음 토닥였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자장, 자장. 착한 아기 잘도 잔다.”
나는 잠이 오지 않지만 이쯤해서 몸살에 걸린 인혁을 쉬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이 든 척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진짜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다시 졸랐다.
“아빠 뽀뽀해주세요. 아빠 뽀뽀 오백 번 해주세요.”
그때 인혁의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나는 눈을 감고 있느라 보지 못했다. 찡그린 얼굴이었을까, 혐오하는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얼굴이었을까. 그러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고 그저 딸을 재우는 아빠의 목소리였다.
“그래. 아빠가 뽀뽀 오백 번 해줄게. 그러니까 빨리 코 자자.”
인혁은 어젯밤 캄캄한 밤에 등뒤로 와서 잠들었던 것처럼 내 머리맡에 앉아서 머리 위에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뽀뽀를 일흔 여덟 번까지 세다 그만두었다. 뽀뽀 한 번, 뽀뽀 두 번, 뽀뽀 세 번.. 새가 모이를 쪼듯이 그가 가볍게 뽀뽀를 해주었다.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감싼 채. 신부님이 아이들에게 축복의 키스를 해주던 그런 뽀뽀에 가까웠다. 이름 모를 새는 계속 울고 있었고 마침내 오백 번의 뽀뽀를 마친 그가 천천히 일어나 헛간 문 쪽으로 걸어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인혁은 갔다. 가버렸다. 헛간문을 등진 채 누워있던 내 눈가로 눈물이 번졌다. 내일 아침은 여행사에 들려 비행기표를 받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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