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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pr 30. 2024

내 차값이 100만 원인데 수리비가 100만 원이라니


'변속기를 점검해 주십시오.'


차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안그래도 주행중에 변속이 부자연스럽더니 뭔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서비스센터에 정비를 맡겼다. 점검결과 미션(변속기)을 교환해야 한다고 했다. 정비사는 여기(서비스센터)에서 정비하려면 돈도 비싸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 미션 전문 업체에 문의해 보란다. 10년 넘게 내 차를 손봐주면서 정직하게 정비해주는 고마운 정비사였다.


지인 소개로 미션 전문 업체를 찾아갔다. 업체 사장님이 직접 차를 시운전해 보더니 미션에 문제가 있단다. 교체가 불가피 하다고 했다. 금액을 물었다. 110만 원이란다.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준다고 하고 정비소를 나왔다.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고 있는 작은아버지에게 전화해 사정을 말했다. 알아보겠단다. 연락이 왔다. 110만 원이란다. 보통 120~130만 원 하는데 아는 사람이라서 싸게 해주는 거란다. 다른 아는 사람한테 알아봐도 똑같이 110만 원이었다. 110만 원을 주고 차를 고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됐다. 왜냐하면 내 차값이 10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내 차는 2009년식 SM3이다. 210,000km 탔다. 수리비가 차값만큼 나오다 보니 이걸 고쳐 타야 할지 차를 바꿔야 할지 고민이 됐다. 지인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자문했다.


"차값이 100만 원도 안 하겠구만 무슨 110만 원을 주고 차를 고친다니?!"


"차 오래 탔네. 이제 바꿀 때 된 거 아냐?"


"고치긴 뭘 고쳐?! 제발 차 좀 바꿔라!!"


고칠 바에는 차를 바꾸는 게 낫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이 정도면 꽤 오래 탔으니 말이다. 차를 사는 경우와 사지 않는 경우를 다 따져봤다. 차를 산다면 무엇을 살지 구체적으로 알아봤다. 중고차를 검색했다.


'세단하면 역시 그랜저지. 그런데 현재 출고되는 모델은 비싸기도 비싸지만 디자인이 아쉽단 말이야. 그전 모델도 그렇고. 그랜저 하면 역시 그랜저IG(17~19년)이지! 어디 보자. 중고 금액이 2,300~2,500만 원 선이네. 적은 금액이 아니네. 흠. 더 낮은 등급의 다른 차를 알아볼까. 소나타나 K5 같은 중형차도 괜찮긴 한데 딱 마음에 들진 않단 말이야. 가격은 아반떼랑 K3가 괜찮네. 그런데 큰 맘 먹고 차 사는데 지금 차랑 동급인 차를 사고 싶진 않은데. 큰 돈 들여 차 사는데 어중간한 차를 탈 바엔 돈 안 쓰고 타던 거 타는 게 낫지!'


새차도 알아봤다.


'예전부터 SUV를 타보고 싶었으니까 SUV를 알아볼까나. SUV는 쏘렌토가 좋다던데. 중간 트림(등급)으로 해서 옵션 넣고 하면 가격이 4,500만 원 정도 되네. 와 SUV 왜 이렇게 비싸다니? 그냥 확 질러? 아냐, 정신차려! 중형, 준대형 세단도 새차 가격이 3,500~4,000만 원정도는 생각해야 되네. 하.. 새차는 엄두가 안 나는 걸..'


새차는 금액이 부담돼 다시 중고차를 알아봤다. 나의 원픽은 여전히 그랜저IG였다. 며칠동안 더 알아보고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000~3,000만 원씩이나 주고 차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돈이기도 했거니와 지금 꼭 차를 바꿔야만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 구매를 꺼리는 데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37살인 현재 내가 모은 돈은 7,000만 원이다. 3,000만 원짜리 차를 산다고 하면 내가 가진 돈의 절반을 소비하는 셈이다. 앞으로 집도 사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몇 천만 원 들여 차를 먼저 산다는 건 순서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차는 소모품이지 않는가.


만약 티브이와 같은 가전이 고장나서 수리비가 100만 원이 나왔다고 하면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새걸로 구매하면 된다. 100~200만 원짜리 새 티브이를 사면 된다. 하지만 차는 다르다. 시세 100만 원인 차가 수리비로 100만 원 나왔다고 해서 차를 바꾼다고 하면 100~200만 원짜리 차를 살 수가-나? 못 산다. 200만 원이 아니라 2,000만 원은 돼야 적당한 연식의 차를 살 수 있다.


수리비 100만 원이 아깝다고 해서 중고차를 사면 취등록세만 100만 원은 되고 새차를 살 경우 취등록세 200만 원은 기본이고 감가되는 금액만 매달 100~200만 원씩은 될 거다. 그러니 돈 100만 원 아끼자고 몇 천 들여 차를 바꾼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 같았다.

 


지인 중 한 사람은 내게, 지금 차를 바꾸면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 나중 되면 차 값이 더 비싸지니 지금 차를 사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이익이다, 저 차를 고친다고 해도 차가 오래 돼서 앞으로 연쇄적으로 수리비가 발생 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말하며 차를 바꿀 것을 권했다. 권한다기보단 차를 고쳐 타려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얘기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데 이게 참 그렇다. 남일은 말하기가 쉽다. 예전엔 나도 그 지인처럼 말한 적이 있었다. 직장 선배 중에도 내 차만큼이나 오래 된 차를 타는 친한 선배가 있었는데 어느날 차가 고장나서 수리비가 100만 원이 나왔고 결국 고쳤더란다. 그 얘길 듣고 "아니, 차가 100만 원도 안 할 거 같은데 무슨 100만 원이나 주고 차를 고쳤대요? 그냥 좀 사요! 몇백 만 원만 줘도 지금 차보다는 훨씬 좋은 거 사겠구만요!!" 하고 장난치듯 말한 적 있었다. 그렇게 쉽게 말했지만 막상 그게 내 일이 되니 생각이 달라진.


내가 돈이 10억이 있으면 이렇게 고민할 도 없다. 바로 새차 지르면 된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1년 전쯤 BMW를 사니 마니 벤츠를 사니 마니 하며 외제차 타고 허세 한번 부려보고 싶다는 내 말에 직장 선배가 한 말이 있다. "사람들이 외제차같이 비싸고 좋은 차 몰라서 못 타는 줄 아냐? 다 이유가 있어." 그땐 흘려들었다. 이제서야 그말이 와 닿는다.



생각 끝에 고쳐타는 게 백 번 이익이라는 결 내렸다. 결국 정비소에 차 정비를 맡겼다. 3일 뒤 차 정비가 완료됐다는 연락이 왔다. 차를 찾으러 갔다. 말끔히 정비되어 있을 차를 찾을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렜다. 중고차를 찾으러 가도 이렇게 설레는데 새차는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차를 인수했다.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변속이 잘 된다. 신나게 쌩쌩 달렸다. 차를 고칠지 바꿀지 그렇게 고민했는데 막상 수리하고 나니 고쳐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차를 탄다고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 나는 이 차가 좋다. 오래된 차를 탄다는 자부심(?) 비슷한 것도 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탈지 모르겠지만 굴러가는 그 날까지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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