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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ug 20. 2024

이제는 남이 아닌 나를 배려하고 싶어졌다

지인들과 1박 2일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펜션으로 가기 전 먼저 식사를 하기 위해 한 중국집으로 갔다. 건물이 특이했다. 식당 같지 않고 중국집은 더더욱 아닌 것 같은 외관이었다. 대형 카페 같은 분위기 좋은 식당이었다. 카페 입구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유명한 맛집으로 나오더니 괜히 그런 게 아닌 듯 싶었다. 대기번호를 뽑고 기다리다가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


가게 안에 사람이 많았다. 식당을 잘 검색해서 왔구나 싶었다. 우리 5명은 간짜장과 탕수육 대자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다. 탕수육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양새가 맛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둥글거나 두툼해야 살코기가 많은데 이 집 탕수육은 너무 가늘고 자잘했다. 혹시나 하고 먹어봤지만 역시나였다. 살코기는 얼마 없고 튀김옷은 두꺼웠다. 더 큰 문제는 탕수육이 너무 딱딱했다는 점이다. 여러 번 튀겼는지 갈색빛을 띄는 것도 몇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게 몇 점 없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같이 있던 지인들도 탕수육을 몇 점 집어 먹더니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걸 골라 먹고 나니 과자뿌수래기 같은 것들만 남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돈이 3만 원인데 이 돈 주고 사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지인들이 더 이상 탕수육에 손을 대지 않을 때쯤 내가 말했다. "탕수육 이거 얘기 좀 하고 올게." 탕수육이 든 그릇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자고 속으로 여러 번 되뇌고는 직원에게 말했다.

- 탕수육이 살코기도 너무 없고 튀김옷도 너무 딱딱해서 먹겠어요.


직원은 탕수육을 힐끗 보더니 내게 말했다.

- 우리 가게 탕수육은 원래 딱딱해요.


엥?탕수육이 원래 딱딱하다니? 직원의 말이 납득이 안 됐다. 예를 들어 우리 가게 냉면은 슴슴하게 만들기 때문에 원래 이렇게 좀 싱겁다거나 우리 가게 스테이크는 육즙을 살리기 위해 원래 이렇게 덜 익혀 나온다고 말하는 건 이해가 된다. 탕수육이 딱딱하다는 건 경우가 다르다. 탕수육은 딱딱한 음식이 아니다. 바로 반박했다.


- 저도 탕수육 여러 번 먹어 봐서 알잖아요. 탕수육을 이렇게 딱딱하게 하는 곳은 본 적 없고요. 어쨌든 살코기도 없고 튀김옷도 너무 딱딱해서 못 먹겠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직원은 한숨을 푹 쉬더니 "어떻게 해드릴까요? 환불해드릴까요?"라고 물었고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예약한 펜션으로 갔다. 짐을 풀고 근처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다. 날이 어두워질 때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펜션 앞에 야외테이블에 고기, 쌈, 술, 밥, 과자, 음료 등등 우리가 산 먹거리를 가득 올렸다.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함께 놀러갈 때마다 고기 굽기를 자처한 동생 H에게 내가 말했다.


- 오늘은 내가 고기 구울게. 평소에 너가 고기를 좀 바짝 굽더라고. 조금만 덜 익히면 더 맛있을 거 같아서 내가 할게.


H는 곧바로 내 말에 반박했다.

- 형님, 고기는 원래 바짝 구워야 맛있어요.


평소 같으면 동생의 말에 수긍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긋한 어조로 내가 말했다. 

- 고기는 살짝 덜 익혀야 육즙도 많고 더 부드럽다.


동생은 다시 내게 덜 익히는 거랑 육즙이랑 상관없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할 것도 같아 나는 그럼 고기 절반은 내가 구울 테니 나머지는 너가 구우라고 말했다. H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저 반응 뭐지? 싶었지만 동생이 마음에 들어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젠 내 마음대로도 해보고 싶었다.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렸다. 숯불에 고기 기름이 떨어지면서 갑자기 불이 확 솟아올랐다.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대며 고기를 뒤집었다가 이리 놓고 저리 놓길 반복했다. 고기를 바짝 굽든 말든 그냥 주는 대로 편하게 먹을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칼은 뽑았으니 두부라도 썰어야 했다. 연기 때문에 눈이 따가웠고 이마에는 땀이 흘러 내렸지만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딱 적당하게 구운 촉촉한 고기가 완성됐다. 맛있었다. 힘들게 구운 보람이 있었다.



내가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게 된 이유


예전의 나였으면 음식점에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무 말 안 했을 거다. 말하면 뭐해 다음부터 여기 안 오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하며 그냥 가게를 나왔을 거다. 동생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고기를 굽겠다고 할 때도 맞춰주고 고기를 바짝 굽도록 내버려 뒀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내가 조금 변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졌다. 이젠 나도 더 이상 남 배려 그만하고 나 자신을 배려하고 싶어졌다.


지금껏 살면서 상대방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웬만하면 내가 다 져주려 했다. 사람들과 놀러 때도 그렇고 직장에서 일을 때도 그렇다. 서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면 기분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져주는 게 편했다. 내가 달라지게 된 건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동생 때문이었다. 업무를 처리할 때 동생과 의견이 다를 때 항상 동생이 하자는 대로 했다. 동생이 나보다 먼저 입사했기 때문에 후임인 내가 맞춰주려 한 것도 있지만 내 방식대로 하자고 하면 그 동생이 못마땅해 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어하는 표정을 보는 게 싫었다. 동생 생각대로 따르는 게 내 마음이 편했다. 몸이 힘든 게 차라리 나았다. 동생이 하자는 대로 웬만하면 다 따라줬지만 동생은 의견 차이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했다. 어쩌다 내가 내 생각대로 하고 싶어 의견을 주장하면 그럼 그렇게 하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곤 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해도 동생은 도와주는 법이 없었다. 가끔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핑계 대며 내게 떠넘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도 속아주는 척하며 내가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절하면 서로 불편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4년을 함께 하고 보니 나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이용 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지난 일을 곱씹을 때마다 분노에 몸서리쳤다. 동생에게 직접 따지듯이 집에서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죽이고 싶었다. 그 동생을.


폭발할 정도로 분노를 여러 번 느끼고 보니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동생이지만 선배인 그 친구를 불편하게 하면 나도 불편해진다고 생각하고 매번 좋게 넘어간 내가, 내가 일을 도맡아 해주면 다음엔 저 동생이 해줄 거라 믿은 내가,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면 조곤조곤하게 내 생각을 말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그 분노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뻗쳤다. 누구든 간에 더 이상 니들이 하자는 대로 해주고 열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니들이 기분 나빠하든 말든 어느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정중하게 얘기하자고 마음먹었다. 더 이상 남 배려만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배려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집에서 탕수육이 이상하다고 얘기했다. 그냥 넘어가는 게 좋은 거라 생각지 않고 내가 이 돈 주고 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하며 내 입장을 설명했다. 그래서 동생에게도 내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양보한 날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만큼은 내 식성대로 고기를 구웠다.




왜 나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성격이 된 걸까


그동안 내 의견을 주장하기보단 상대 의견에 맞춰줬던 게 어릴 적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많이 예민했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도 스트레스 받곤 했다. 쉽게 스트레스 받다 보니 타인도 나처럼 쉽게 상처 받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불편해할 만한 상황이 포착되면 먼저 나서서 그 불편함을 덜어주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가 불편한 것보다 상대가 불편해할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직장 동생 때문에 너무 악에 받쳤는지 요즘은 의견 차이가 생기는 상황이면 민감해진다. 예민해진 만큼 타인의 언행에 쉽게 분노한다. 별것 아닌 말에 혼자 씩씩거린다. 불친절했던 그때 식당 직원에게 독하게 따져 물었어했는데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영화관 매점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그때 이렇게 대꾸 했어야 했는데 라며 화기 가득한 혼잣말을 한다. 운전중에 앞차가 느리게 가면 온갖 짜증을 토해내기도 한다. 사람이 이상해진다. 점점 쌈닭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이든 적당한 제일 좋다. 상대 의견에 무조건 다 따라줄 필요도 없고 반대로 내 주장을 너무 고집해서도 안 된다. 중도의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도 배려하면서 때로는 나 자신도 배려하며 살 일이다. 중심잡기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내가 되기 위해 다시 한번 균형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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