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중에는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지 않는다. 못생긴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다. 머리를 잘 꾸민 후 거울을 보면 좀 멋있어 보일 때는 있다. 거울 속에는 비교 대상이 없으니 멋있는 걸로는 내가 1등이다.
가끔 얼굴이 좀 덜 돼 보인다고 느끼게 되는 장소가 있다. 먼저 옷집이다. SPA 브랜드 옷집처럼 규모가 큰 매장에서 옷 구경 하다가 벽에 있는 거울을 보게 될 때 내 얼굴이 좀 덜 돼 보인다. 집 화장실 거울에서 보던 얼굴보다 덜 생겨 보인다. 보통 거울이랑 좀 다른가 싶어 요리조리 훑어봐도 평범한 거울이다. 단지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내 얼굴을 보고 갸우뚱 하게 되는 또 다른 장소는 미용실이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거울을 보고 앉아 있으면 대형 SPA 브랜드 매장 속 거울에서 나를 본 것보다 훨씬 덜 돼 보인다.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하고 깜짝 놀란다. 남들 눈에는 내가 이렇게 보이겠구나 싶다.
며칠 전에 미용실을 갔을 때도 그랬다. 원래 가던 미용실이 아닌, 처음 간 미용실이라 거울 속 내가 더 낯설었다. 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미용사의 눈에도 내가 이렇게 보이겠구나 싶었다. 이런 내 얼굴이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었던 걸까. 미용실이 외모를 다듬는,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얼굴을 자세히 봐야 하는 곳이라 그랬던 것 같다.
자기비하가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럴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0대 때 사람들로부터 외모 지적을 많이 받았다. 빼빼 말라서 볼은 움푹 패어있었고 얼굴엔 여드름이 가득 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왜 이렇게 말랐냐, 피부가 왜 이렇게 됐냐고 물었다. 안타깝다는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개그맨 누굴 닮았다는 식의 얼굴 평가도 많이 받았다. 못생겼다는 말도 가끔 들었다.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 지인을 통해 얘기를 들어보니 그 여자는 외모를 많이 본다고 했다. 외모에서 탈락이란 생각에 속이 쓰렸던 기억이 난다. 나와는 절대로 사귈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몸서리치는 여자도 있었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 충격이 컸다.
못 생긴 걸로 소문났던 친구의 이야기
내가 고등학생 때 우리반에 친구 K가 있었다. K는 못생겼다. 그냥 못생긴 게 아니라 진짜 못생겼다.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도 있구나 싶은 정도였다. 빼빼 마른 몸 때문에 외모가 더 볼품없었다. 남고인 우리 학교 바로 뒤에 여고가 있었는데 여고에서 못생겼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못생긴 친구였다.
반 아이들도 모두 그를 보며 못생겼다고 놀렸다. 나도 놀린 기억이 있다. 가만히 있는 K에게 다가가 "와, 니 진짜 못생겼다." 하고 놀렸다. 그러자 K는 "아, 그래 알았다 좀! 그만 좀 해라!!" 하고 짜증을 내며 인상을 구겼다. 성격이 좋아 여러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K였지만 반 아이들의 잦은 외모 놀림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K와는 소식이 끊겼다.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20대 중반쯤 내가 롯데아울렛에 쇼핑을 갔을 때였다. 나이키 매장에서 옷을 보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K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물었다. K는 나이키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 얼굴은 학창시절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스타일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통이 되게 큰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머리는 장발을 해서 파마를 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너무 멋있었다. 스타일이 좋아져 오히려 내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잘생기고 못생기고는 상관없지만 멋스러움으로 밀리는 건 싫어하는 나는 K에게 기세가 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K의 눈빛, 표정, 행동에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라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K가 못생겼다고 놀림 받던 고등학생 시절에 내게 한 말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 나는 '내가 잘생겨서 쳐다보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땐 자기 위로에 불과한 말로 여겼다. 못생긴 얼굴을 바꿀 수 없으니 정신승리라도 하자는 자기 합리화로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K는 항상 자신을 긍정했다. 그 마음가짐이 학교 졸업 후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을 더욱 멋있고 스타일리시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이 분명했다.
고등학교 동창에게 K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평소 K와 연락하며 지냈던 동창은 K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모태솔로였던 K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놀랐지만 놀라움도 잠시였다. 왠지 수긍이 됐다. 내가 아울렛에서 봤던 K의 멋스러움과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감 있는 모습이라면 여자친구가 생긴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머리 커트가 끝나고 샴푸를 한 다음 다시 의자에 앉았다. 미용사가 드라이기로 내 머리를 말리는 동안 나는 거울 속 내 얼굴을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자꾸 내 얼굴이 못 생겨 보인다고만 생각하는 거지? 그냥 나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바라봐 주면 안 되나?'
그러곤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뭐 이만하면 괜찮네. 코도 오똑하고 눈도 매력있고. 어라, 좀 멋있는데? 계속 보니 잘생겼구만.'
그렇게 자기암시를 하니 덜 생겨 보였던 내 얼굴이 꽤 괜찮게 보였다.
흔히들 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잘 와 닿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까진 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를 싫어하지만 않으면 된다. 지금껏 옷가게와 미용실의 거울 속 나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어디서 어떤 모습을 있든 나 자신을 이만하면 괜찮다고 예쁘게 바라봐줘야겠단 다짐을 해본다. 겸손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자뻑이 필요한 때이다.
요즘따라 점점 머리숱도 줄어들고 피부에 검은 반점도 생기는 등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나지만 그런 나를 보며 긍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