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연차다. 쉬는 날이지만 평소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실천중이다. 이제 고작 3일차다.
전날에 많이 먹고 자서 그런지 속이 약간 더부룩했다. 속을 완전히 비운 다음 아침 식사를 하고 싶었다. 허기짐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수영이 좋겠다. 알아보니 평일 아침에 자유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등산을 갈까? 바로 집 뒤에 산이 있으면 모를까 차 타고 20분을 가면서까지 산을 오르는 건 부담이다. 역시 제일 무난한 건 산책이다. 집 근처에 저수지와 시골스러운 마을이 잘 어우러진 작은 동네가 있다. 마을까지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가는 것도 좋지만 저수지 근처만 보고 걷다 올 거라 차를 타고 이동했다.
목적지는 배내마을이라는 곳이었다. 차 타고 10분 정도 가야 나오는 구석진 마을이다. 가는 길목이 조금 이상했다. 공사를 하는지 온통 쇠파이프와 높은 판때기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이 인근 지역이 법조타운이다 뭐다 하면서 재건축이 시행되는 건 알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낡은 주택이며 국밥집이며 화훼단지며 주유소까지 다 문을 닫은 지 꽤 됐기 때문이다. 대로변에 있는 지역은 그렇다 쳐도 마을 안쪽까지 이렇게 다 공사를 하는 줄은 몰랐다. 그 오솔길에서 예전에 봤던 풍경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록달록한 예쁜 꽃도 없고 허름한 주택도 없다. 사람만 보면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도 없고 꼬끼오 하고 울부짖는 닭들도 없다. 이런 집에서 살면 괜찮겠다 싶은 잘 지은 벽돌집도 없고 밭을 일구는 농사꾼들도 없었다.
배내마을로 가는 고즈넉한 오솔길을 알게 된 건 코로나 때였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이 어려울 때 집에 갇혀 있는 무료함과 울적함을 달래주던 길이었다. 유독 그 길이 애뜻했던 건 풍경이 예쁘기도 했지만 집 근처에 그 길 말고는 걸을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집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보다도 한 살이 더 많은 5층짜리 낡은 아파트와 자동차길뿐이다.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편의점을 가든 카페를 가든 하천을 걷든 하려면 차 타고 10분은 가야 된다. 차 없이 걸어서 갈 수 있는 풍경 좋은 길이 저 배내마을로 가는 오솔길뿐이었는데 이제 예전과 같은 경치를 보며 걸을 수 없다는 게 슬플 뿐이다.
길 곳곳마다 공공주택지구라고 현수막이 걸린 걸 보니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양이다. 요즘은 자리만 났다 하면 아파트를 짓는다 난리다. 돈에 혈안이 돼서 자연이 파괴되든 말든 아파트를 짓는 걸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파트를 3채 가지고 있는 한 지인은 이런 현상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돈이 얼마나 좋은 건지 내게 설명한 적 있었는데 난 모르겠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돈만 많으면 되는 건가? 발전이 마냥 좋기만 할까? 기후위기가 왜 생긴 건데? 알 수 없는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는 왜 이렇게 도는 걸까? 알게 모르게 매일 먹고 마시는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은 괜찮은가?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만큼 결국 다 사람에게 돌아온다.
자본주의로 떡칠이 된 오솔길을 지나 배내마을에 닿으니 다행히도 이 마을은 유지되고 있다. 배산임수의 자리에 있는 그림 같다고 생각했던, 햇볕이 잘 드는 2층짜리 집도 그대로다. 하지만 여기도 언제 허물어질지 모른다. 마을 입구 바로 코앞까지 공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건물을 짓기 위해 논밭을 쑥대밭으로 일궈놓은 땅 위로 뭔가가 날아다닌다. 날파리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잠자리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50마리는 넘어 보인다. 7살 때 아파트 단지를 뒤덮은 잠자리떼 이후로 이렇게 많은 잠자리는 처음이다. 이제 얼마 뒤면 저렇게 마음껏 날아다니지도 못할 텐데. 삶의 터전을 잃고 어디론가 떠날 잠자리들을 생각하니 사람인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