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에 용변 보러 들어갔다가 휴대폰을 발견했다. 소변기 위 벽 선반에 폰이 올려져 있었다. 누군가 소변을 보기 위해 폰을 올려놨다가 깜빡하고 두고 간 모양이었다. 이렇게 놔뒀다간 다른 누군가가 폰을 가져가서 팔아버리거나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주워서 폰 주인을 찾아주기로 했다. 화면을 켰다. 배경화면을 보니 60대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사람의 사진이 나왔다. 화면은 잠겨 있어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전화가 오길 기다려야 했다.
10~15분 정도 기다려도 아무 전화가 오지 않았다. 약속이 있어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약속 장소는 차 타고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내가 폰을 가지고 가자니 폰 주인이 멀리까지 와야 할 것 같아 고민이 됐다. 근처에 경찰서도 보이지 않아 어디 맡겨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화장실에 갖다 놓자니 아무도 찾아줄 것 같지가 않았다. 괜히 주워왔나 싶은 귀찮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일단 폰을 가지고 이동하기로 했다. 폰주인이 멀리 와야하든 아니든 어찌됐건 찾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식사를 하던 중 주운 휴대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폰주인이었다. 나이가 60대 중반쯤으로 추정되는 남자였다. H지하철역 7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20분 정도 기다리니 다시 전화가 왔다. 도착했냐 물으니 H지하철역 1번 출구에 있단다. 7번 출구로 와달라고 말했더니 "벌써 1번 출구로 왔는데?!"라고 반말을 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약속중이라 시간 오래 비우기가 어려워 7번 출구로 오시면 안 되겠냐 했더니 "7번 출구까지 가려면 저 위로 한참 가야 되는데."라며 귀찮은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내가 가자 싶어 1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했다.
7번 출구에서 1번출구까지의 거리는 약 250m였다. 폰주인과 엇갈리지 않도록 폰을 광고하듯 얼굴 높이까지 들고 사람들을 살피며 걸어갔다. 1번 출구에 다왔는데도 폰주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전화가 왔다. 그는 내게 어디냐며 살짝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1번 출구에 왔다고 말하니 자기는 7번 출구에 왔단다. 분명 1번 출구에서 보자고 했는데. 오는 길에 보지 못했다 하니 7번 출구가 아니라 7번 출구쪽 지하에 있다고 했다. 출구에서 보자고 하면 보통 계단을 올라서 바깥을 생각하지 않나? 황당해서 "지하에 계시면 제가 못 찾죠."라고 했더니 혼자 궁시렁궁시렁 하더니 갑자기 "하.. 씨발끄" 하고 욕을 하는 게 아닌가. 이건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왜 욕을 하세요?"라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폰주인은 폰을 왜 그 먼 데까지 가지고 갔느니 어쩌니 저쩌니 하며 막 화를 냈다. 이런 사람은 더 이상 도와줄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밖에 아무 데나 폰을 두고 갈까요 하고 물으니 그렇게 하란다. 길거리에 있는 벤치 위에 폰을 올려두고 자리를 떠났다.
되돌아 걸어가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 도와주려고 한 건데 되레 욕을 먹어 화가 났다. 사실 그날이 내 여자친구와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첫 식사자리였던 터라 더 짜증났다. 여자친구 옆에 내가 같이 있어야 여자친구도 마음이 편할 텐데 그런 상황에서 밖에 나갔다 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얼마 전 무릎 부상 때문에 뛰는 걸 자제중임에도 최대한 빨리 돌아오기 위해 뛰어 갔다 왔는데 내가 이런 욕 먹으려고 그렇게 뛰었나 싶은 생각에 더 기분이 상했다.
물론 폰 주인의 마음을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내가 주운 폰을 갖고 다른 데로 와버리는 바람에 자신이 내가 있는 곳까지 와야 하니 짜증났을 거다. 심정은 이해한다. 그래도 욕설은 아니다. 그렇게 욕하는 건 선 넘는 행위다. 이유가 어찌됐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폰을 안 주워 올걸 그랬다고 말하니 그녀는 "나였으면 폰 그냥 두고 나왔을 거 같아."라고 말했다. 찾아주기도 귀찮고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거 같아서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이 됐다.
사실 화장실 벽 선반에 폰이 올려져 있는 걸 보고도 사람들이 다 모른 척하는 게 처음엔 의아했다. 누군가 폰을 잃어버렸으면 찾아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누가봐도 잃어버린 폰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 괜히 번거롭게 남의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참 야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와 같이 도와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경험을 일찍이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남의 일에는 관심 끄자고 마음 먹었던 게 아니었을까.
세상이 점점 삭막해진다 해도 나만큼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돕겠다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도와주고도 좋은 소리 듣지 못할 거라면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남 일에 신경 끄고 사는 게 현명한 선택인 걸까.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헤맨다 해도 나는 모른 척하고 내 갈 길 가면 그만인 걸까.
'누가 어떻게 되든 나만 아니면 된다', '남의 일에 관여해서 좋을 게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는 어떤 기준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고민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