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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도 Oct 29. 2022

클라이언트

아이 기질에 따라 달라지는 육아 난이도

잠시 외주 광고 대행사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한 대기업의 외주를 받아 온라인 콘텐츠들을 꾸리는 곳이었다. 회사를 잠시 쉬고 있는 사이 먼저 제안이 들어왔고, 전에 일했던 곳보다 월 100만 원씩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나는 뼈를 갈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월 100씩 더 벌 수 있으니 어떤 고생도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아마 내 직장생활을 통틀어 가장 불행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고객사의 욕구를 맞추기 힘든 것 까지는 괜찮았다. 수정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고객사 담당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에 따라 결정되었다. 근거나 논리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마치 스무고개를 하는 것 같았다. 본인도 원하는 방향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면 좋겠다는 게 매번 돌아오는 피드백이었다. '느낌'. 그녀의 feeling을 만족시켜야 했다. 


시의성이나 콘텐츠의 밀도에 대한 요구 보다, 결이 맞지 않는 트렌드를 갖다 붙이기를 더 원하는 식이었다. 나는 결국 그녀의 전두엽 속에 숨은 느낌 찾기에 실패했다. 그렇게 한두 달을 지적질만 받다 보니 나중에는 내 자존감까지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일도, 육아도 사람이 하는 거여서 결국 '사람'이 어떤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 따라 팀워크가 달라지고, 클라이언트에 따라 업무 강도가 달라지며, 아이의 기질에 따라 엄마 삶의 질도 달라진다.


나는 우리 부부에게서 둘째와 같은 성향의 아이가 태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양가 어머님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둘 다 애기 때부터 순했다. 잘 자고 잘 먹고 다 크도록 속 한번 썩어본 적이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식구들은 너무 의아해했다. 이렇게 안 먹고 막무가내로 드러누워 우는 손녀를 낯설어하셨다. 


둘째는 입이 짧고 울음 끝은 길고 잠은 꼭 엄마 손 끝에서만 자는 아이였다. 재우러 들어가면 한 시간 가까이씩 배를 쓰다듬어줘야 잠이 들었다. 신생아 때는 방귀나 응가를 한 번 하려면 한 시간씩 울어댔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응급실이라도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둘째 울음을 달래다 같이 울었던 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열도 없고 밥도 잘 먹었는데 왜 이렇게 울지..? 응급실이라도 가볼까?" "가서 뭐라고 해, 애가 울어서 왔다고 해?"


두 돌이 된 지금은 말이 통하기 시작하면서 떼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출구 없는 터널에 가로등 빛 하나가 켜지는 순간들도 늘어날 것이다. 회사에서 만난 클라이언트는 안 보면 끝이었다. 하지만 내 배 아파 낳은 새끼랑은 그럴 수가 없었다. 별 수가 없어 보듬고 키우고 하다 보니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도 보고, 좋다.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다 낳으면 키우게 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직접 낳아보니, 맙소사... 세상에 그보다 무책임한 말이 없었다. 그 무수한 밤들을 같이 새 주고 365일 24시간 같이 키워줄게 아니면 하면 안 되는 소리였다. 


내 새끼 내가 키우는 거지 자식 키우는걸 뭐 그렇게 힘들어하냐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종종 친정엄마가 나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힘든 걸 어쩌겠는가.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사랑스럽다고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고, 힘들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도 아니다. 


내게 아이의 존재는 그렇다. 아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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