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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도 Oct 29. 2022

퇴사는 해봐야 안다

엄마는 어디에 가서 퇴사해야 하나요

분명 회사가 주는 안락함이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이다. 매달 받을 때는 사이버 머니 같은데 막상 퇴사를 하고 나면 단박에 티가 났다. 쥐꼬리 같던 월급이 용꼬리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속감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 몇 달은 자유로움에 날아갈 것 같지만 곧 불안에도 날개가 돋았다. 


그렇다고 그 공백의 시간들을 불안감에만 젖어 살지는 않았다. 국내외로 훌쩍훌쩍 여행도 다녀오고 배우고 싶었던 것을 공부하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이 앞다퉈 취업을 할 때는 1년을 작정하고 논 적도 있었다. 긴 인생에서 놀기도 잘 놀아야 다음도 잘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긍정이었다. 긍정의 저변에 있는 불안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대책 없는 내 성격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퇴사를 해봐야, 회사의 중요성도 느껴졌다. 내가 느낀 '중요성'이란, 적당한 긴장감과 정신 및 사회성의 기름칠 같은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라는 인간이 다듬어지는 과정. 그 와중에 얻어지는 성취감. 농경사회 같은 형태의 노동은 아니지만, 노동은 분명 신성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우주 안에서만 안락하게 살던 한 인간이 퇴사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찾는 일이었다. 


퇴사는 조직 부적응자의 마지막 결정이 아니다. 실패의 문고리도 아니다. 그저 한 공간의 문을 닫고 새로운 공간의 문을 여는 열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엄마에게도 퇴사가 존재할까?


현직 엄마로서 답하자면,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이다. 


육아는 '기를 육, 아이 아'를 써서 아이를 기른다는 뜻이다. 여기서 아이라 함은 10세 이전의 아이를 뜻하는 것 같지만, 기준을 성년이 되기까지로 잡는다고 쳐도 20년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말이 있다. 부모 눈에는 자식이 60이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말.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자식의 법정 나이는 부모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저 영원한 아이일 뿐이니. 나는 내 친정엄마를 보며 '육아는 내가 죽어야 끝나는 레이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어머니들의 성격에 따라 큰 차이는 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천군만마 같은 친정엄마를 두고 있다. 조금 유별난 엄마의 모성이 한 몫했는데, 그게 어느정도냐하면.


둘째를 임신한 후부터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심한 위경련이 너무 자주 와서 한 달이면 기본 두 번씩은 응급실로 실려가기 일쑤였다. 밤새 방바닥을 구르다 새벽 5시 30분이 못 된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엄마는 한 시간도 안 걸려 우리 집에 도착하셨다. 친정집과 우리 집 사이 거리는 KTX로 20분,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이다. 기차역까지 오고 가는 시간을 합쳐도 절대 1시간 안에 올 수 없는 거리였는데, 그야말로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온 것이었다. 


지금까지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인 이유식도 두세 번 밖에는 되지 않는다. 엄마는 이유식을 만들어 냄비채 끌고 오거나, 그릇마다 소분해 얼려 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직접 우리 집에 와서 만들어 놓고는 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1년 반 가까운 시간은 매주 목요일 새벽에 내려와 금요일 밤에 올라가셨다. 타지에서 혼자 연년생 육아하는 외동딸 걱정 때문이었다. 월화수만 버티면 엄마가 온다는 생각에 큰 우울감 없이 힘내서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일일이 다 적을 수 없는 상상초월, 지극정성의 행렬이 지금도 현재 진행형 중이다. 




엄마에게 있어 퇴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복지가 빵빵하다. 간간히 주어지는 인센티브와 포상휴가가 사람을 환호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아이가 초저녁에 일찍 잠들거나 낮잠을 오래 자거나 아침에 늦게 일어날 때이다.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아이가 잠을 잘 자주면 정말 짜릿하다. 짧은 포상휴가를 받는 기분이 든다. 


한도 초과인 멍충미는 거저 주어지는 인센티브다. 한 인간의 생애에 가장 귀여운 시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허를 찔러 폭소가 터진다. 어떤 때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뱉어 가슴이 찡해지기까지 한다. 고되기만 했던 하루가 갑자기 보람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회사와 같이 내가 얼마의 노동력을 제공했으니 얼마의 대가를 받는다는 공평한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합리하고 절대적인 헌신만을 바쳐야 하지만, 엄마들은 그런 작은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것으로 족하다. 오히려 차고 넘친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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