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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도 Oct 29. 2022

재입사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20대 후반, 같이 오래 일했던 동생이 다시는 방송을 안 하겠다며 그만둔 적이 있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다들 몇 달 쉬다 새 프로그램이 들어가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친했던 피디 한 명이 콜을 보냈고, 동생은 이렇게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나는 이제 여의도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싸는 사람이니까 전화하지 마세요!"


얼마나 질렸으면. 적당히 좋게 거절하고 끊을 수도 있는 전화였을텐데. 동생은 그 길로 방송국을 떠났고, 미련 없이 새 직업을 찾아 일했다. 


얼마 뒤, 나도 방송국을 그만뒀다. 작은 사건이 있었고, 마음을 정리하려 혼자 땅끝마을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콜이 왔고 나는 방송국으로 돌아갔다. 그만 둘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는데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같은 문제에 걸려 넘어져 방송을 그만뒀다.   


너무 고된 날을 보낸 어느 날, 소파에 축 늘어져 신랑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아.. 너무 힘들다... 자식을 안 낳았더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텐데..."

"그러게."


"안 낳았어도 괜찮았을 거라고 봐. 우리 둘 끼리도 또 잘 지냈을 거야."

"그랬겠지...?"


잠시 정적이 흐른다. 누가 듣거나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안 낳았을 거라는 전제를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근데 또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가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과거로 돌아가 아이들을 갖는 것에 대해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전제는, 육아의 고됨과 힘듦을 다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매번 꽤 진지하게 깊이 고민한다. 이번 주에 로또 1등이 나라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듯이 진심을 다해 생각한다.


열 번 중 여덟 번 정도는 그래도 낳겠다는 답이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의 답은, 안 낳겠다가 아니라 모르겠다로 결론이 난다. 이것을 모두 합해보면, 우리 부부는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이를 낳는 쪽을 택할 것이다. 


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특출 나게 우세해지는 것은 없다. 아이를 통해 얻는 인생의 지혜?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 그건 정말 육아서에나 나오는 교과서적인 멘트일 뿐이다. 현실감이 전혀 없다. 파스스하게 늙어가는 몸뚱이만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오히려 나라는 인간의 이기심과 바닥을 깊이 탐구하는 시간이 된다. 자괴감은 이제 내 영혼의 소울메이트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아주 조금씩 편해지는 것은 있다. 만 3년을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똥기저귀 가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슬슬 기저귀 떼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대신 쉬야가 마렵다고 하면 화장실을 찾아 아이들을 들고뛰는 미션이 하나 더 생겼다. 하나가 끝나면 하나가 더 생기는 마법 같은 육아. 도장깨기 하듯 짜릿하다. 


앞서 적었던 말이기도 한데, 이게 변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이가 태어나고 한 번도 통 잠을 자본적이 없다. 자면서도 아이의 뒤척임이 들리는 엄마의 본능에 가까운 밤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일이었지만,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서툴러도 해내게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모성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내 엄마에게서 보던 모성 같은 건 자동으로 탑재되는 게 아니었다. 내 새끼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배가 고파 속이 쓰려도 아이부터 먹여야 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때도 몸을 일으켜야 했다. 참는 것뿐이었다. 이제껏 내가 해왔던 인내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내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는 것 같아 슬픈 날에도 아이 사진을 넘겨보며 기쁨을 느끼고, 울면서도 아이를 웃기려 장난감을 흔들어대던 모순 같은 감정들. 그게 그동안의 육아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내가 더 자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인생의 몇 가지 것들을 더 습득했다는 생각은 든다. 나는 여전히 내가 되고 싶고, 뛰어난 엄마들의 발 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완전무결한 헌신적인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최소한 내 인생의 보상을 아이에게서 찾지 않는 엄마는 될 것 같다. 


나는, 나의 작은 보스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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