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업무일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누가 이 아이들의 예쁜 시간을 기억해줄까? 하는.
나는 노트 한 권을 구입해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예쁜 말이나 행동을 했거나 해주고 싶은 말들이 생길 때마다 적어두고 싶어서였다. 아이들 사진은 열심히 찍어주지만 그 사진 안의 이야기까지 남겨주고 싶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이 될 삶의 지혜나 인자한 엄마의 일기를.
하지만 쓰다 보니 이건 일기가 아니라 반성문에 가까웠다. 오늘도 미안했다는 이실직고로 한 페이지가 채워졌다. 가끔은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엄마가 20~30년간 정성껏 적어 내려갔다며 건네준 노트에 대한 기대가 있을 텐데... 이게 반성문인지 편지인지 헷갈려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물론 매일 적지는 못한다. 성인이 되기까지를 최소로 치고 1년에 한 권씩만 적어도 20권은 될 텐데... 읽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깔끔하게 한두권 정도가 서로를 위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출산을 통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엄마가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웠겠구나, 나를 바라봤겠구나'. 지금도 다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아주 조금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을 대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유년의 한 페이지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앞에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내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친정에 갈 때면 아이들 목욕을 도맡아 주던 엄마를 보면서 내 몸 구석구석도 저렇게 살뜰히 씻겨 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 아빠랑은 좀처럼 눈 마주치고 웃을 일이 없었는데, 아이들을 보며 웃는 아빠를 볼 때면 나를 저런 미소로 바라본 적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내 기록을 통해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 중 하나는, 스스로를 믿는 힘이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는 처음에는 내가 이 아이에게 일상의 도덕이나 착한 마음, 바른 행동 등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가르치는 것 이상을 습득했다. 엄마인 내 조바심이 아이를 다그쳐서 그렇지, 잘해보려고 늘 노력했다. 알려준 것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주었다.
아이들이 기억하기를 바랐다. 얼마나 착한 마음을 가진 존재였는지. 놀이가 잘 안 되면 포기했다가도 후에 다시 방법을 찾아낸 끈기에 대해서. 길을 가다가도 사물을 관찰하고 발견하던 탐구력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속상함에 엉엉 울다가도 마음을 그쳐 눈물을 닦아내던...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들을 인생에 끊임없이 쌓아가던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랐다.
어느 날 자신의 초라함에 못 이겨 이 노트를 펼쳤을 때, 잠시 웃음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굴곡진 시선에 아파하다 잠드는 하루가 아니라 다시 스스로를 옷 입고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으로 나의 보상은 차고도 넘칠 것이다.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남기는 나의 노트는 엄마의 업무일지와 다름없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인수인계서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를 떠올려보자. 얼마나 막막했단 말인가. 공간과 사람도 낯선데 업무가 제일 낯선 그 기분. 인수인계서가 얼마나 꼼꼼히 적혀있느냐에 따라 향후 내 신수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인수인계서를 보다 보면 흐름이 보였다. 연간 계획과 그 사이사이에 실행해야 하는 세부 계획들이 빼곡했다. 이전 담당자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도 여실히 파악이 되었다.
모자라지만 기록에 있어 성실했던 엄마가 남긴 노트 한 권. 내 아이들은 이 한 권을 가이드 삼아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갈 것이다. 엄마와 딸로 존재했던 우리들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곁에 없는 순간에도 엄마의 온기와 필체만은 가득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