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이 적군인데, 적군이 아군이라고?
여기까지 읽어 내린 독자라면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겠다.
"그럼 엄마가 저렇게 애쓰는 동안
대체 아빠는 뭘 한다는 말이지?"
맞다. 아빠는 대체 뭘 하는 걸까.
평생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먹고 집안일에는 일절 손도 안 대봤을 그 녀석. 아들과 남자로만 살아오다 갑자기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면서 겪어야 하는 자아 대혼돈의 시기를, 내 남편도 지나게 된다.
그도 낯선 변화에 적응하느라 힘들 것이라는 아량은 당시로서는 품기 힘들었다. '나도 귀하게 큰 딸이고 엄마 되느라 똥 빠지는 것 같은데 대체 저 남자는 뭘 하는 거지?' 싶은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 편과 네 편이 분명했다. 내 편의 친한 사람들과는 조화롭게 일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집안 사정은 직장 생활과 달랐다. 남편은 분명 아군이라는 생각으로 결혼했는데 적군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그는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었구나'하는 한탄에 하늘이 무너지려다 갑자기 아군이 되기도 했다. 이 무슨 조화 속일까.
첫째를 낳은 후 그 녀석은 아기를 품에 안겨줘야만 안을 수 있었다. 본인 팔뚝보다도 작은 아이를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처음에는 그 모습도 무척이나 감격스럽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리원과 친정집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니 현실의 첫 장이 펼쳐졌다. 당장 눈앞의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둘 다 연년생 육아 신입으로 당첨된 우리에게 노하우 같은 것은 없었다. 작은 것도 몸으로 부딪혀 깨져야만 터득할 수 있었다.
남편은 대부분의 일을 도와주려 했지만 아이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건 아이들이 조금 자란 지금까지도 큰 이변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엄마랑 할 거야! 엄마가 안아! 엄마랑 먹을 거야!"와 같은 똥고집의 자세. 그만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회사 생활에서도, 집안에서도, 지나친 책임감이 문제였다. 회사에서 종일 시달리고 왔을 남편을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 그거 내가 곧 할 거야, 금방 하니까 내가 할게, 이것만 하면 되니까 쉬고 있어" 그럼 말을 그렇게 했으면 깔끔하게 내가 했으면 되는 일인데 또 속은 그렇지 못했다.
'어 안 오네, 그렇게 말했어도 와서 도와줘야지 진짜 안 오네...'하고 혼자 삐졌다 화까지 이르렀다. 앞 뒤가 상식적으로 안 맞지만 널을 뛰던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던 시기였다.
내가 그리 하라고 해서 앉아 있던 남편은 늘 눈뜨고 당하는 식이었다. 몇 개월을 같은 문제로 삐지고 화내고 영문도 모르고 풀어주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해야 할 것을 정확히 말해달라는 남편의 요청에도 나는 좀처럼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눈치껏 알아채서 움직여달라는 내 요청에 남편 역시 쉬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끝내 결실을 이루는 법.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지만 또 인간에게는 학습능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제 남편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많은 것을 한다. 가끔은 '오, 이것까지 해놨다고?'싶을 정도로 발전했다. 회사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업무 노하우와 같은 짬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고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통잠은 영원히 오지 않고 나는 이렇게 집에서 애랑 썩어갈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애는 자라고, 업무도 손에 익는 시기가 온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처럼 진부한 말이 없게 느껴졌는데, 가장 정직한 사실이었다.
시간이 싸매는 것은 상처뿐만이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만 존재하던 우리를 부모로 자랄 수 있게 성장시켰다.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자라게 하는 것이 시간이었다. 처음 하는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서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음인 것이다.
물론, 지금도 수습 딱지를 떼지 못한 신입처럼 허둥지둥할 때도 있다. 가끔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리게 하던 던 그놈은 과장급으로 승진시켜도 부족하지 않게 되었다. 이 정도 팀워크이면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하게 제법 합이 맞는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