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소도 Oct 22. 2023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

간혹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나의 미래. 물론, 내 계획대로 될리는 없겠지만 계획을 꿈꾼다. 


핸드폰을 볼 때면 이따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전화번호부를 한번 싹 정리해야겠다는.


왜냐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나게 되면 내 핸드폰에 남아있는 전화번호부로 부고 문자가 갈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성격상 열이 맞춰지고 각이 잡힌 걸 좋아한다. 평소에는 수시로 카톡 속의 대화상대를 정리한다. 


아예 교류가 완전히 끊겼다거나 끊고 싶으면 차단 목록으로. 지금은 연락을 안 하지만 그렇다고 대화를 하지도 않는 이들은 숨김 목록으로. 그리고 현재는 대화를 안 해도 내 마음속에 연이 이어진 사람이나 종종이라도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만이 내 대화목록에 남아있다.


너무 오래 지나버린 옛 직장의 동료나, 어떤 이유들로 연락을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내 소식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궁금하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 장례식장이 어떤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까지는 없다. 그건 남는 이들이 알아서 꾸려주겠지. 


또 하나는 항암에 대한 생각이다. 암에 걸리고 친한 친구와 잠시 그런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항암 할 생각이야?"

"아니, 나는 아직 항암이 필요가 없대. 그런데 해야 할 때가 오면... 받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래, 내 주변에도 항암 받고 너무 고생만 하다 떠나신 분들이 계셔서... 항암은 안 받았으면 좋겠어."

"응, 내 생각도 그래."


모르는 이가 들으면 아무리 친구라도 뭐 저런 중요한 문제를 이래라저래라 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는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친구니까. 


항암에 대한 통상적인 모습들이 있다. 털이란 털은 모두 빠지고 혈색을 모두 잃은 모습으로 힘없이 누웠다 가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하고 게워만 내는 모습들은 보이고 싶지 않다. 사람을 삐쩍 말리다가 끝내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게 내 머릿속의 항암에 대한 모습이다.


물론, 항암으로 완치되신 분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항암 치료가 주는 이점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과 남편이 내 마지막 모습을 지금의 엄마로 알아주기를 바란다. 갑자기 내 암이 속도를 내 공격형으로 바뀐다거나 하면 내 계획에는 차질이 생길 것이다. 급격하게 살이 빠지거나 다른 증상들로 발현이 될 테니. 


그러기 전까지는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 기억에 남고 싶다. 내 체취는 모두 사라지고 약 냄새만 가득 풍기는 엄마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든, 뭘 해서든 악착같이 살 거다. 받을 수 있는 건 모두 다 받을 거다. 


소포성 림프종의 평균 생존율이 10년이라는 것도 오래전 이야기다. 그 사이에 신약이 많이 개발되어 어느 정도의 표적 치료도 가능하게 되었다. 


진단을 받던 날 의사가 내게 했던 말도 그거였다. "그 사이에 약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으니 상태가 나빠지면 그때 항암이나 다른 치료를 시작해도 됩니다."라고.


이제 암에 걸린 지 1년 반이 되었다. 간혹 뉴스 등을 통해 내 병명을 검색해보곤 한다. 무슨 약이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FDA 승인을 받는다. 무슨 약이 소포성 림프종 환자에게도 치료 확대 적용되었다 등등...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게 다 내 이야기가 될리는 만무하지만, 나쁜 소식이 아닌 게 어딘가. 이만한 게 어딘가 싶다. 


다만, 아직도 그런 생각은 있다. 만약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게 되고 그게 내가 감당이 어려울 정도의 치료 과정이라면 나는 집을 떠나 치료를 받을 거다. 집 근처에 작은 원룸을 얻어 혼자 지내며 치료를 받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또 나으면 그때는 웃으면 걸어 들어오면 될 것이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아 그대로 떠나게 된다면... 최소한 집안 곳곳에 힘들어하던 내 모습의 잔상은 남기지 않는 것이니 남은 가족들이 덜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장 바라기는 그런 일 없이. 평생의 진행 없이. 느리고 게으른 나를 닮아 내 암도 여기에서 멈추기만을 제일 바란다. 그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간절히 꿈꾼다.

이전 07화 암에 걸리고 제일 슬펐던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