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소도 Oct 21. 2023

암에 걸리고 제일 슬펐던 것

암에 걸리고 제일 속상했던 건, 아이들이었다. 아마도 속상하다는 단어만으로는 그때의 내 기분이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괜찮은데, 내가 애들한테 가족력을 물려줬다는 게 너무 속상해... 애들도 나처럼 아플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줘버렸다는 게, 못 참겠어..." 확진을 받고 혈액종양내과 문을 나서며 내가 신랑에게 했던 첫마디였다.


좋은 것만 주면서도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건만...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질병에 대한 가족력을 주고 싶을까. 그리고 그 확률에 내 아이들을 끼게 한 것이 제일 슬프게 느껴졌다.


서울 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난 후 주치의를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질문이 있다. 가족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의학적 의미의 가족력이라 함은, 직계 가족 중에서 2명 이상이 같은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내 아이들의 직계 가족 범위에는 나 말고는 암을 앓는 이가 없다. 물론, 나도 없다. 팩트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내 아이들이 나와 같은 림프종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하지만 팩트와 상관없이 종종 걱정스럽다. 


나는 이렇게 마흔이 넘어도 엄마가 필요한데... 한창 손이 갈 시기에 내가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아직도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나를 볼 때마다 속으로 기도한다. 아이들이 엄마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그 순간마다 곁에 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엄마가 단순히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때쯤이면 제철 재료는 뭐가 있고, 아직 그건 맛이 덜 들 시기라는 것 등. 검색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삶의 지혜들은 엄마에게서만 거저 얻을 수 있다. 엄마의 언덕에서 나는 여전히 등을 기대어 눕고, 땀을 식힌다.


마흔이 넘도록 이렇게 엄마를 의지하는데, 하물며. 이제 4살, 5살인 아이들을 두고 암진단을 받는다는 건 보통의 일 이상이었다. 




하지만 슬픔은 내게 자신의 다른 단면도 안겨주었다. 내가 또 이렇게 하루를 살아 아이들을 한번 더 안아보고 살을 부대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의 다른 이름은 '감사함'이다. 


암에 걸렸는데, 감사하다니... 너무 모순적인 말 같겠지만, 사실이다. 


진단을 받던 날, 의사가 했던 말 중에서. "소포성 림프종"과 "2기입니다." 사이에서 나는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이었다. 실제로는 "소포성 림프종 2기입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2초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 찰나의 두 단어 사이에서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암?!' '2기?'. '2 기면 시간이 있겠구나'였다. 채 2초도 안 되는 순간에 저 모든 생각이 나를 때렸다.


물론, 나도 사람이어서 화나고 힘들 때는 '이놈의 인생 지겹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감사로 마음을 덮는다. 내게 아직도 사랑할 시간이 주어지고, 충분히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때때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 모든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관통해 쪼개 놓지 않았다는 것. 지금 이 시간에도 천천히 스미고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매일의 내 기도 속에 있는 한 마디는, 새 밤을 주심같이 새 아침을 주신 것에 감사드린 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이전 06화 암에 걸려도 바뀌지 않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