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끼이이익-
“이봐, 아가씨!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죄, 죄송합니다!”
비오는 금요일 오후 6월의 더위는 끈적끈적하고 눅눅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우산도 없이 뛰어드니, 등 뒤로 기사 아저씨는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서둘러 버스를 출발시킨다. 매정한 세상, 오늘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험은 거의 백지로 내다시피 했고, 함께 뒤풀이를 하자던 친구들은 끝나기 무섭게 약속이 생겼다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혼자 과방에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앗, 차가워!”
일단 비를 피하려고 버스 정류장의 지붕 아래로 뛰어들었다. 한참 가방을 뒤지고 나서야 우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하루다. 엄마는 아침에 외갓집에 간다고 했으니 지금 나를 데리러 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먹구름이 빼곡히 들어찬 하늘은 전혀 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아, 이대로 비를 맞고 가야 하는 건가? 한 정류장 지나쳐서 내린 탓에 집까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 상황이었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짜증 나!”
내 목소리는 커다란 빗소리에 묻혀 내 귀에 조차 들리지 않았다. 도저히 저 세찬 빗줄기 속을 달릴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은 비가 좀 잠잠해질 때까지라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포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사치스러운 여유를 즐겨보겠어? 갑자기 비가 와서 그런지 금요일 오후 치고 거리는 제법 한적했다.
음악이라도 들으려고 이어폰을 찾아 가방을 뒤지던 중에 문득 길 건너편에 눈길이 멈추었다. 마치 그곳만 다른 세상이라도 되는 양 고고한 자태로 서있는 하얀색 2층짜리 건물은 몇 년을 이 동네에서 살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저런 건물이 있었던가?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건물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오렌지색 조명, 우아한 빛깔의 와인색 박공지붕,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된 벽, 이윽고 나는 그 건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지붕 색과 같은 와인색으로 흘려 쓴 ‘Cafe O’neul’이라는 글자를 발견해낸 것이다.
“저 정도면 갈 수 있으려나?”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건너는 사람도, 기다리는 차도 없는 횡단보도는 신호등만이 쓸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심호흡을 하고 횡단보도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거셌지만,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 낯선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빗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규칙적으로 떨리고 있는 사람의 등을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때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미처 시선을 돌리지 못한 나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남자의 얼굴은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도 못한 채로 멀뚱히 서있었다.
“뭐야?”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고 그 사람의 와인색 앞치마에 눈길이 닿았다. 흰색으로 쓰인 ‘Cafe O’neul’이라는 글씨로 보아, 남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 그게….”
남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거리는 나를 그냥 홱 지나쳐갔다. 카페 문 앞까지 다다른 남자는 갑자기 돌아서더니 뭐라고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거센 빗소리에 남자의 목소리는 나에게까지 제대로 닿을 수 없었다. 나는 멍청한, 아마도 엄청, 얼굴로 되물었다.
“뭐, 뭐라구요?”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남자는 다시 빗속으로 뛰어들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미쳤어?”
나는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이 무례한 언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빠르게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멍하게 있자, 남자는 다시 소리를 지른다.
“왜 비를 맞고 돌아다니는 거야?”
비 오는 금요일 오후, 그때는 그날의 우연한 만남이 나의 그해 여름을, 아니,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사건이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그해 여름이-
“현재 북상한 장마 전선의 영향으로-”
핏, 소리를 내며 TV가 꺼졌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소파 위에 던지고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시원한 느낌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지루한 방학이다.
“심심해 죽겠네.”
누가 그랬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죽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그러니 목숨이 수백 개는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 틀린 말이 아니다. 심심해서 죽겠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바닥에 던져두었던 휴대폰에 혹시 메시지라도 왔을까, 싶었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토독토독, 빗방울이 창문에 달라붙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길게 빼서 밖을 보니 알록달록한 우산들이 바쁘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고열과 몸살이 동반된 지독한 여름 감기는 일주일이 넘게 떨어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배는 고픈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혼자 중얼거려 보지만, 그렇다고 음식을 대신 만들어 줄 사람이 생기지는 않는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데,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반가움에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다아야-”
나는 거칠어진 호흡이 전해질까, 싶어서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다행히 아무것도 모르는 전화 속 그 사람은 다정한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나갔다. 통화의 내용은 감기는 좀 어떠냐는 정말 사소한 인사말이 고작이었지만, 나는 가슴이 떨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 너희 집 근처에 와있는데, 잠깐 나올 수 있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네? 지금 계속 집에만 있어서 엄청 초췌한데….”
“괜찮아, 그래도 예쁘니까.”
그 사람은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의 곁을 계속 맴돌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 가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던져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노, 농담도, 선배!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어요. 음, 그럼 어디 들어가서 조금만 기다릴래요? 금방 갈게요.”
“응, 기다릴게.”
“큰길에 오늘이라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에서 볼까요?”
그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달리는 무모한 짓을 하면서도 나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날처럼 빗속의 하얀 건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의 걸음은 더욱더 빨라지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묵직한 나무문을 열자, 맑은 종소리와 함께 무뚝뚝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책에서 잠깐 눈을 떼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다아야, 여기야!”
그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날아갈 듯 가벼웠던 나의 걸음이 갑자기 무쇠로 만든 추라도 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반가워하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다.
“여, 연주야?”
하얀 원피스를 입고 구불구불한 긴 머리를 그대로 늘어뜨린 연주, 그리고 그 옆에 그 사람이 있었다, ‘내 친구’ 연주의 남자 친구인 그 사람이-
“괜히 나오라고 한 건 아니니?”
“계, 계속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던 참이었어요.”
“그럼 다행이네, 어서 앉아.”
삐걱, 소리를 내며 의자가 움직였다. 내가 의자에 앉아마자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메뉴판과 내 몫의 물을 가져다주었다. 연주와 그 사람 앞에는 이미 커피 두 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있었다, 아마도 주문을 받고 돌아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나는 대충 눈에 띄는 메뉴를 골랐다.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 주세요.”
남자는 대답도 않고 홱, 돌아가 버렸다. 그날도 마치 내가 부모를 죽인 원수라도 되는 양 굴었던 사람이었다.
“감기 걸린 거야?”
연주가 진심으로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잠길 것만 같아서 입을 열 수 없었다. 나는 가끔 연주의 진심이 담긴 친절이 불편했다, 그건 내가 꼬인 사람이라서 그렇겠지만.
“참, 이건 선물이야.”
연주가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연주와 그 사람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두 사람이 몹시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내가 그 사람을 연주의 남자 친구로 만났더라면, 분명히 나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을 테지만-
“선물? 갑자기 무슨 선물이야?”
“오빠네 부모님이랑 여행 갔을 때 사 온 거야, 별로 좋은 건 아니고.”
“여, 여행?”
실수다, 형편없이 떨려버린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바쁘게 궁리하고 있는데, 마침 테이블 위에 머그컵이 탁,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묘한 빛깔의 뜨거운 액체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주문했던 아이스 카페라떼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돌아서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올 만큼 아픈 사람이 차가운 걸 마시겠다니, 정신이 집 나갔어? 감기에 좋은 차니까, 그거나 마셔.”
남자는 자기가 할 말만 하고는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뭐야, 역시 나를 기억하고 있었잖아? 이 황당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나는 손을 뻗어 컵을 들고 한 모금 홀짝였다. 감기에 좋다는 차는 생강차였다. 연주와 그 사람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는 사이야, 저 사람?”
“음, 그냥 조금.”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연이든 아니든, 좋은 타이밍이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으니까, 이런 마음. 언제나, 언제나, 사실은 두 사람이 헤어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너무 싫은 나의 추악한 마음.
“이거 지금 뜯어봐도 돼?”
나는 한껏 들뜬 척을 하며 선물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와, 정말 예쁘다!”
작고 노란 꽃을 압화(押花)한 작은 손거울은, 그래,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선물을 고른 사람은 연주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아니, 그 사람이기를 바랐다.
“내가 고른 거야, 마음에 드니?”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 사람이 나를 위해 고른 선물, 단지 내 멋대로의 해석이었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음에 들어요, 정말로-
왜 사람은 만나는 순서대로 좋아할 수 없는 걸까? 먼저 만난 것도 나이고 먼저 좋아한 것도 나인데, 하지만 어째서-
“잠깐 화장실 좀.”
하지만 어째서 내가 아니라 연주인 건가요?
나는 화장실이 어딘지도 모른 채 무작정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쳐버리고 싶은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는 미처 몇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두 손 가득 냅킨을 들고 있는 남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남자는 왜인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야, 너 괜찮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에 갑자기 설움이 복받쳤다. 나는 왈칵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남자는 당황한 듯 허둥거리더니 들고 있던 냅킨 더미를 불쑥 내밀었다. 나는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얼른 얼굴을 감쌌다. 왜 내가 아니냐고 나는 그 사람에게 끝내 물어보지 못할 것이다.
“야, 너 뭐야? 왜 울고 그래?”
“미안해요,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파서 정말 미안해요.”
궁색한 변명이었지만, 그 순간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꾹꾹 누르며 손을 저어 보였다. 그제야 남자의 앞에서 울어버린 사실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다아야, 괜찮아?”
별안간 등 뒤로 들려온 연주의 목소리에 나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라 말을 삼켰다. 나는 애써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연주와 그 사람은 시선을 주고받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모습이 내겐 그래 봤자 너는 절대 우리의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는 일종의 신호처럼 보였다.
“몸도 안 좋은데 괜히 불러내서 미안해.”
“데려다줄게. 차 가지고 올 테니, 천천히 나와.”
그 사람은 계산을 하고 나가고, 연주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넓은 카페에는 나와 남자만 남겨졌다. 나는 선 채로 한쪽 벽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았고, 남자는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저기요.”
나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남자를 불렀다. 남자는 이번엔 또 뭐냐는 듯이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 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여기 아르바이트생은 더 필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