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오늘일 수 있을까?
“어째서 이런 곳에 거울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살짝 실눈을 뜨고 거울 옆에 붙은 네임카드를 보았다. 너의 오늘. 작은 글씨로 그 거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너의 오늘, 그렇다면 설마?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사진의 네임카드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너의 어제.”
어쩌면 그동안 나는 모른 척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윤후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눈을 감아왔다. 우리의 안정적인 관계가 어그러지는 게 두려워서.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니?”
말을 하면서도 섬뜩함을 느꼈다. 나는 상실(喪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너무 어릴 때 돌아가신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제외하곤 나를 둘러싼 세계에 죽음의 그림자는 아직 한 번도 드리우지 못했다. 그래서 겪어보지 못한 상실에 더 큰 공포만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대답해 줘.”
남자는 넋이 나간 듯했다. 나는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재촉할 수 없었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 짙은 어둠이 묻어나는 듯했다.
“그래, 맞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전시실의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의 방향이 미묘하게 바뀐 후에야, 남자는 입을 열었다. 나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이 기쁘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했다. 대답을 한 남자는 우두커니 거울을 바라본다. 너는 지금 누구를 보고 있니? 지금 네 옆에 서있는 나일까, 아니면 사진 속의 네 옆에서 웃고 있는 그녀일까?
작년에 우리 학교 미대에 다니던 여학생이 교환학생으로 간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의 나와 동갑, 겨우 스물한 살의 요절이었기에 그 소식은 방학이었음에도 학생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나갔었다. 그런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이유정일 거라곤, 나는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하지만 그 영화의 포스터 앞에서 얼어붙은 남자를 봤을 때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민서에게 그 여자의 이야기를 해줬으니까.
“그 녀석은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나를 한 번도 만나러 오지 않은 걸까?”
남자가 중얼거렸다.
“유정이는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어.”
참 안 됐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그녀의 짧은 생을 통해 보잘것없는 자신의 긴 인생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던 우리에겐 어쨌든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던 그녀의 죽음이 내 인생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너무 맑고 아름다운 눈물이어서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그의 얼굴로 손을 가져다 댔다. 누군가에겐 인생이 걸린,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고통받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는데, 우리는 얼마나 가볍게 그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그 불행의 대상이 자신이 아님에 안심했던가.
- 앞으로의 네 인생에는 분명 더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어제는 어제에 남겨두고 너는 너의 오늘을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이 네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커다란 거울의 귀퉁이에 흘려 쓴 글자로 몇 개의 문장이 적혀있었다. 그제야 사장님이 나와 남자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이유를, 그와 그녀의 사진을 전시한 이유를, 그곳에 거울이 있어야 했던 이유를, 그 거울의 제목이 ‘너의 오늘‘인 이유를 깨달았다.
어제, 그리고 오늘.
나는 너의 오늘일 수 있을까?
그와 그녀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들은 사장님을 따라 파리에 갔었다. 파리에서 머물며 그들은 이탈리아, 독일, 체코, 네덜란드,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로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여행은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문제로 심하게 다투게 되었고 화해를 하지 않은 채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항상 파리를 떠올리면 고통스럽다고 남자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우리는 갤러리 옥상의 카페에 앉아있었다. 기울어가는 태양이 콘크리트 바닥에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남자는 앞에 놓은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얼굴은 피로와 슬픔으로 뒤덮여 있었다. 남자는 한결 차분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어쨌든 그들의 관계는 계속되었고 남자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연인이었고 때로는 오누이였고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남자의 전역이 가까워졌을 때 그러니까 작년 5월 즈음,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군대만 아니면 그와 그녀의 사이를 갈라놓을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 믿었었다고 남자는 말했다. 그래서 하루하루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 그녀는 파리 유학을 통보했다. 어떤 상의도 없이,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고 확정된 후였다. 말 그대도 통보였다고 했다. 그가 사랑한 그녀의 단단함이 그를 절망으로 밀어 넣은 것이었다.
“손님, 혹시 필요한 건 없으세요?”
깔끔한 유니폼을 차려입은 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묻는다. 나는 조용히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눈치 빠른 직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러섰다.
“좀 걷자.”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그를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옥상 카페는 실내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와 바로 도로 쪽으로 나갈 수 있는 야외 계단이 있었다. 우리는 하얀 철제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바로 도로로 나왔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저히 사장님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물었어, 대체 나는 네게 뭐냐고.”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으며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와 한 걸음 떨어져 걸으며 조용히 그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너는 나의 일부야. 남자는 그녀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니, 사실은 과연 자신이 그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며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는 잠시 맞잡은 우리의 손을 내려다본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자의 전역을 이틀 앞두고 그녀는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기억하려고 애써도 그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질 않아.”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시간이 그들 앞에 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마지막이 되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기억해두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고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걸, 이 삶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하면서. 사실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올지 안 올지도 모를 먼 미래로 미루곤 하잖아.”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 세상이 차가운 푸름으로 물들었다. 동쪽 하늘에선 샛별이 반짝이며 고개를 들이밀었고, 서쪽 하늘로는 태양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이 막 시작될 즈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계절에 생일을 얼마 앞둔 남자는 엽서 한 통을 받았다. 우표 위에는 프랑스 우체국의 인장이 찍혀있었고 에펠탑을 찍은 흑백 사진 뒤에 낯익은 글씨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남자에게 파리로 와줄 것을 부탁했다, 그곳에서 남자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다고. 남자는 당장 모아둔 저축을 몽땅 털어 항공권을 샀다. 그리고 생일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생일 전날 공항으로 향했다. 곧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잠도 이룰 수 없을 만큼 설렜고, 그녀를 만나면 전할 사과의 말을 몇 번이나 연습했다고 했다.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용기가 필요하구나,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생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유, 그날 거울 앞에서 초조한 듯 옷매무새를 다듬었던 이유, 그의 말쑥한 슈트 차림, 그리고 그날 밤 그렇게 형편없이 취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이유. 모두, 그녀의 기일이 바로 그의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비행기에 올랐을 때 승무원이 전화를 끄라고 소리치는 와중에 파리에서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는 승무원의 경고도 무시한 채, 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그녀의 룸메이트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는 그 순간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상대방은 알아듣기 힘든 억양의 영어로 그녀의 사고 소식을 전해왔다. 남자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몽마르트르에 갔던 그녀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고. 몽마르트르에는 그와 그녀가 좋아하던 베이커리가 있다고 남자는 덧붙였다. 승무원이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는 남자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그는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동안 그가 견뎌왔을 시간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이 남자를 칭칭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척척 이해할 정도로 영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자는 내게만은 자신의 내면을 들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게만은.
파리로 향하는 12시간의 비행 동안 남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먹을 수도, 잘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승무원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고 했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룸메이트를 따라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룸메이트는 그녀가 의식이 잃기 직전까지도 케이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사망선고 시간은 신기하게도 그가 샤를 드 골 공항에 착륙한 시간과 같았다고 그는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우리는 강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우리를 집어삼킬 듯 검푸른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를 기다리며 하루를 더 살고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 나는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였다. 지극히도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온 내가 죽음이 갈라놓은 그들의 인연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그 와중에도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녀석을 죽게 만든 거야.”
고통에 잠긴 목소리였다. 이럴 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줘야 하는 걸까? 하지만 대체 그런 말들이 무슨 소용일까! 내가 그 어떤 말을 한들 그에겐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을 텐데. 내겐 그런 힘이 없다는 비참한 진실 앞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제방 위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남자의 손을 놓아주었다. 남자는 내 손을 다시 잡지 않았다. 비행기 한 대가 까만 하늘을 가로지르며 반짝이고 있었다.
“비행기 타고 싶다.”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곤 문득 슬퍼졌다. 그의 비행기는 항상, 언제나, 파리를 향해 날고 있겠지. 다시는 살아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눈앞에 있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아플까, 볼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아플까.
“내 전화를 받은 아저씨도 서너 시간 후에 파리에 도착하셨어.”
그는 느릿느릿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한달음에 파리로 달려온 사장님은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자제력을 잃으셨다고 했다. 아내를 잃고 하나 남은 딸마저 죽었다. 그 엄청난 불행 앞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일 거라고 남자는 말했다. 이성을 잃은 사장님은 차갑게 식은 딸을 품에 안고 남자에게 온갖 저주와 비난을 퍼부으셨다. 남자는 그저 멍하니, 멍하니 그 모든 말들을 세포 하나하나에 새기듯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후에 사장님은 어른스럽지 못하게 그에게 그런 폭언을 쏟아부은 것을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사과를 받았다고 간단히 지워질 상처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사장님이 그에게 유난히 관대한 까닭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그녀의 죽음이 그의 탓이 아니란 걸 사장님도 당연히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닥친 그 엄청난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분노를 표출할 무고한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단지 그것은 그녀의 운명이었을 뿐이라고, 짧은 생을 살다갈 운명. 애초에 그녀가 너를 두고 떠나지만,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 네 탓이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내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녀보다는 지금 내 옆에서 떨고 있는 그가 더 소중했다. 내가 결국 사랑하게 되고만 이 남자를 두둔하고 감싸고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를 지킬 도리가 없었다. 만약 나라면 너를 두고 그런 식으로 떠나진 않았을 거야, 나는 너를 혼자 두지 않았을 거야, 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니까.
“현아.”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이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조용한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그의 신실한 신자처럼, 혹은 충실한 노예처럼 입을 다물었다. 잘했어, 라는 식으로 남자는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천천히 몸을 기울여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는 봉인(封印)하듯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찰나의 입맞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나는 눈을 떴다.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남자가 내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앞으로의 네 인생에는 분명 더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어제는 어제에 남겨두고 너는 너의 오늘을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이 네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