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어김없이 스물여덟의 여름이 찾아왔다.
“다녀왔어.”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데 다진이가 돌아왔다. 열린 문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춥지?”
“응, 겨울이야.”
“배는 안 고파?”
“괜찮아.”
코트를 벗는 다진이에게서 겨울 냄새가 묻어났다.
“할아버지는?”
“주무시지.”
“응.”
곧장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진이는 쇼파에 걸터앉는다. 나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다진이를 돌아보았다. 다진이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안 졸려?”
“누나.”
언젠가 나는 이런 다진이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무미건조한, 그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목소리.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왜?”
“정윤후, 오늘 여기 왔었지?”
느릿느릿, 띄엄띄엄, 다진이의 낮은 목소리.
“어떻게 알았어?”
그러니 돌아와. 그 사람의 따뜻한 목소리.
“학교로 찾아왔었어. 그래서 집으로 가보라고 알려줬어.”
“그랬구나, 어쩐지.”
나는 이 대화가 불편했고, 다진이는 다진이대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눈치였다.
“피곤하겠다, 어서 자.”
다진이 몫의 옷을 건네며 나는 일어났다. 더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방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해 여름 이후 원래도 겁쟁이였던 나는 더욱 겁쟁이가 되어 툭하면 이런 식으로 도망을 치곤 한다. 그때도 그랬다. 학교도 가고 싶지 않았고, 그 도시에 남아있고 싶지도 않았다. 안녕, 이라고 쿨한 척했지만, 사실은 비참했다. 나를 가지고 놀았던 걸까? 놀리는 게 재미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수능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까 해.”
그래서 결국 나는 도망쳤다, 그해 여름으로부터. 부모님은 황당한 눈치였지만, 이미 다진이의 전례가 있어 비교적 쉽게 도망칠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다진이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특히 다진이는 내막을 대강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물며 실수로라도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이 없었다.
“하, 학교는?”
“어차피 등교 안 해도 되잖아.”
다진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나는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다진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할까 봐, 그게 겁이 나서 도저히 물어볼 수 없었다.
“알았어, 그건 일단 수능이 끝나면 생각할 문제야. 어서 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또 내 방, 아니, 본래는 다진이의 방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누나는 어떡할 건데?”
하지만 다진이는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결국 반쯤 열린 방문에 몸을 걸친 채로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계속 여기에 있을 작정이야?”
모른 척을 해주기에 어른스러운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라니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할 말이 없잖아.
“글쎄, 생각해 볼게.”
“나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누나.”
언제까지고 이대로 숨어있을 순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래, 그렇게 하자.”
나는 천천히 그렇게 말했다.
밤이 되면 계절은 더욱 명확해진다. 공기의 온도와 질감이 확연히 지금이 여름임을 알려준다. 낮 동안 달아올랐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시간, 남색 하늘에 별이 총총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간.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내게도 어김없이 스물여덟의 여름이 찾아왔다.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나를 오늘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우리는 착실히 멀어져 가고 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추억들, 하지만 이런 밤이 되면 이젠 떠오르는 것도 거의 없는데 그저 이따금씩 가슴만이 희미하게 아련해진다.
“언니, 미안해요, 어제 갑자기 야근이어서.”
나는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다. 나를 발견한 지혜 언니는 질끈 묶은 포니테일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언니에게 작은 선인장 화분을 건넨다.
“이건 선물이에요, 물주는 걸 잊어버려도 되는 걸로. 꽃다발은 금방 시드니까 화분으로 샀어요.”
“고마워, 선물은 안 줘도 되는데.”
“사인회는 어땠어요?”
지혜 언니만이 5년 전의 여름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다. 그해 여름,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내 곁을 떠났다. 한때는 친구였던 아이들이 그랬고, 한때는 내가 사랑했던 그가 그랬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지혜 언니와는 인연이 이어지고 있으니, 역시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모양이다.
“응, 나쁘지 않았어.”
대답을 하는 언니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져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의 처녀작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년 전 출간한 두 번째 작품이 적절한 마케팅까지 더해져 제법 유명해지면서 이런저런 매체에 소개되고 언니는 사인회까지 여는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언니의 첫 사인회에 꼭 가겠다고 며칠 전 약속에 약속을 거듭했지만, 결국 나는 심술궂은 팀장의 방해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터였다.
“떨리진 않았어요?”
“다아씨, 있잖아.”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언니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왜, 무슨 일 있어요?”
“다아씨, 놀라지 말고 들어.”
“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언니는 약간 당혹스럽다는 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왔었어, 윤현.”이라고 언니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한참 후에야 그 짧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혀 뜻밖의 이름이었기도 했고, 그 이름을 완전히 잊고 있었단 사실에 놀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5년 만에 거의 처음으로 듣는 그의 안부였다.
“내 사인회라는 걸 알고 온 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더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아씨, 내가 괜한 얘기를 꺼냈어?”
언니가 걱정스러움과 미안함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뇨, 아니에요. 아, 그 애는 잘 지내고 있던가요?”
나는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마치 친하지 않았던 어느 동창의 소식을 묻듯이.
“음, 훨씬 더 근사한 남자가 되었더라고. 그래도 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어. 내가 아는 체를 하니까, 조금 놀라는 것 같기도 했어. 어쨌든 굉장히 반가워해줘서 어쩐지 낯선 느낌이었어. 그런 타입, 솔직히 아니었잖아?”
“그랬었죠.”라고 나는 조금 웃음기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새록새록 그의 얼굴 생김새나 말투, 목소리 등이 떠올랐다. 언제나 찌푸린 듯 퉁명스러운 표정, 어쩌면 저렇게 얄미울까,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쌀쌀맞은 말투, 하지만 참 듣기 좋았던 낮은 목소리. 이런 것들을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에 대한 것은 거의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말은 안 했어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뭐 하는지?”
“딱히 물어볼 경황이 아니어서 길게 이야긴 못했어. 음, 여자 친구한테 호텔로 바로 갈 거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아마 한국에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지 아닐까?”
여자 친구. 언니는 무심코 올린 단어였지만, 나는 그 단어에 마음이 묶이고 말았다.
“여자 친구?”
다행스럽게도 어떤 다른 감정도 묻어나지 않고 그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가 나와 주었다. 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담담히 한때는 이유정을 사랑했고, 한때는 나를 바라보던 남자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여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늘씬한 키에 도도한 얼굴, 화려한 스타일. 어딜 봐도 예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다행이네요,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참, 김영호 팀장님은 잘 계세요? 못 뵌 지도 한참 됐네요.”
지혜 언니 너머로 두 명의 여자와 한 쌍의 커플이 보인다. 잠시 멍하게 그들을 바라보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곳은 한때 내가 있었고, 그가 있었고, 우리가 있었던 그 카페였다. 이제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바뀐 카페. 지난 5년 동안 한 번 더 주인과 간판이 바뀌었지만, 햇살이 쏟아지던 유리창만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 사람이야 여전하지, 뭐.”
언니의 뺨이 살짝 붉어지는 것은 눈 감아 주기로 한다. 5년 전, 그해 여름을 계기로 간간히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하던 두 사람은 김영호 팀장님의 주선으로 언니의 처녀작이 출판된 것을 계기로 지금껏 티격태격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몇 번인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사실은 사귀고 있는 거 아니냐는 내 질문에 두 사람은 서로 강하게 부정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인연이란 건 생각보다 단단하게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법이니까.
언니는 선인장 화분을 꼭 안고 크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나도 환하게 웃으며 “또 봐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카페 앞에서 언니와 헤어진 나는 집으로 향한다. 5년 전과 다름없는 길을 따라, 터덜터덜.
언제나처럼 일상은 잔잔히 흘러갔다.
아침에 눈을 뜨고 부산스럽게 출근을 하고 책상 정리를 하고 앉으면 업무가 시작된다. 오전엔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간단한 미팅을 하면 금방 시간이 간다. 친한 동료들과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오후에는 다시 일을 하고 조금 나른할 때는 건물 옥상에서 잠깐 바람을 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하루가 또 이렇게 갔구나, 생각하며 적당히 눈치를 보며 회사를 나선다.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보면 어느덧 잘 시간. 매일이 쳇바퀴 같은 일상. 여름이 와도 더 이상 설레는 일은 없다.
“다아씨, 오늘 곧장 집으로 갈 거야?”
회사 선배의 물음에 숨은 뜻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네, 좀 피곤하네요.”
지난밤,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소식을 전해 들은 탓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 이미 오래된 일인데도, 오랫동안 잊고 지낸 일인데도, 마음이 쓰이고 만 것은 감정이 깨끗하게 정리되지 못한 채로 끝나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퇴근길, 버스 차창 밖으로 여름밤의 풍경들이 스쳐간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해 여름을 지나 다시 여름이 돌아왔을 때,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에펠탑도 보고, 개선문도 보고,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았다. 하지만 몽마르트르 언덕만큼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다. 어쩐지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또래의 동양인이 지나갈 때마다 움찔거렸다. 그를 닮은 뒷모습을 따라 한참을 걸었던 적도 있었다. 파리를 떠나기 전날, 나는 미루고 미루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만약에 우리가 정말 인연이었다면, 나는 그곳에서 그와 우연히 만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가진 마지막 미련이었고, 서툴기만 했던 우리에 준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걸었을 법한 거리를 걷고, 그가 앉았을지도 모를 벤치에 앉고, 그도 즐길지 모를 커피를 마시는 일에 만족해야만 했다.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구나, 나는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아니,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말다니. 나는 덜컹거리는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안 되겠다, 싶어 휴대폰을 연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이윽고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아야?”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왠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빠요?”
“아니.”
“퇴근은?”
“아직. 조금 더 있다가 해야 할 것 같아.”
“그럼 바쁜 거네요.”
전화 속 그 사람은 살짝 웃으며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사실은 조금 바쁜데 잠깐 전화할 시간은 돼.”
그리곤 쑥스러운 듯, 음, 하고 딴청을 피운다. 나는 피식, 웃고 만다.
“그런데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퇴근은 했니?”
“네, 지금 버스 안이에요.”
짧은 통화였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차피 만나지도 못할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웠던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지금 내 곁에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의 사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