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걷던 날들이 있었다.
아침 6시, 찬 물속을 가르며 시작되는 하루.
학교 수업, 학원, 숙제까지 이어지는 타이트한 시간표.
그 안에 나를 향한 질문은 없었다.
그저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 시절
'진로'를 향해 걷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인정'을 향해 뛰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만하면 충분해”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그제야 숨을 들이쉴 수 있었을까?
단상 위에서 메달을 걸고 내려오는 길,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느꼈다.
'이 길의 끝에 내가 원하는 게 있을까?'
그 질문은 오래 남았고,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한 채
운동을 놓았고, 그림과 무용을 포기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틀리지 않는 선택’을 골라왔다.
괜찮은 학교, 나쁘지 않은 성적,
그럴싸한 말투와 조심스러운 행동들.
그 모든 것이 나를 지켜주는 듯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 안에서
하나도 살아있지 않았다는 걸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안다.
나침반은 거창한 철학이나 대단한 목표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 감각이었다.
세상의 방향은 언제나 바깥을 향하지만
진짜 방향은 내 안에 있다.
내가 설레는지, 내가 숨쉬듯 하고 있는지,
내가 아프지 않은지를 보는 일.
그것이 나만의 나침반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이들을 보며 그 감각을 다시 배우고 있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
나는 내 안의 방향을 다시 맞춘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것,
스스로 허락하지 못했던 것,
그 모든 것을 이제는 하나씩 꺼내어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길은, 나를 기쁘게 하는가?”
질문이 있다는 건,
길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방향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비록 아직 완벽한 지도는 없지만,
내 안의 감각은 살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나는 충분히 잘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