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세워보고 택시를 잡아봐도 누군가가 나의 뒤를 쫓아오는걸. 집 안에 숨어도 방문을 잠궈도 내 맘 속에 니가 있잖아."
오랜만에 먼데이키즈의 "미행"을 들으며 나는 알아차렸다. 아직 그 자가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구나.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도 문득 돌아보면 바로 코앞에 있구나. 그 자를 처음 알아챈 건 중학생 2학년 때쯤이었다. 학교에 적응을 하고 힙합에도 깊이 빠진 참이었기에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이유가 없었는데도 나는 무언가가 자꾸 쫓아오는 것 같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는 걸까 찜찜해하던 와중 먼데이키즈의 새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목은 <The ballad>.
당시 나는 먼데이키즈를 발라드 그룹 중에서 제일 좋아했다. 학원 버스에서 흘러나온 "가지 마"를 들은 것을 시작으로 그들의 감수성에 푹 빠졌다. 힙합이 내 마음을 잘 보듬어주곤 했지만 미처 다 보듬지 못한 부분은 먼데이키즈의 발라드가 해결해 주었다. 웅장하면서도 절박한 운율과 애수 젖은 사색적인 목소리는 내 마음 모서리부터가 이미 적극적으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곧 나는 그들의 싱글, 프로젝트 앨범 등을 찾아듣고 작업물을 기대하는 팬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온 <The ballad>. 나는 여전히 무언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을 겪는 채 집으로 돌아왔고 앨범을 재생했다. 앨범 커버는 멤버 세 명이 공손하게 손을 오므리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흑백으로 처리되어 아련함이 풍겨 나왔다. 게다가 제목이 <The ballad>라니. 그들의 감성을 정수로 담아낸 발라드가 담겨있을 것 같아서 나는 기대하며 들었다. 오르골을 감는 듯한 1번 트랙 "그리운 사랑아"를 듣자마자 나는 과연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행이라는 노래가 뒤따라 흘러나왔다. 숨겨진 것을 확인하려고 무언가를 들추는 듯한 피아노 소리로 잔잔히 시작되더니 후렴에서는 보컬의 목소리가 애절함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나 좀 그만 따라오라고
그만 잊혀져만 달라고"
곡을 전부 듣자 나는 내 뒤를 밟던 자가 선명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앞에서 "이제야 보여?"라고 물어왔다. 그 자의 정체는 옛날이 오롯이 담긴 추억이었다. 추억. 너무나 많이 만나서 진부하게 느껴질만한 것. 이제 그만 만날 때가 되었다 싶어 밀어놓았던 장면. 그러나 추억은 말귈 몰라 떠나지 않고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처음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
그 자와 동행하곤 했다.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방문을 닫고 앉은 의자에서도 나는 추억에 잠기곤 했다. 에버랜드로 수학여행을 간 때의 일, 숙소의 모양과 친구들 이름, 운동장에서 한 체육 활동 등. 그런데 회상이 계속될수록 현실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나는 추억을 외면하기로 했다. 성공적으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미행"이라는 가사는 내 한때의 처지와 너무나 똑같아서 다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던 범인은 그렇게 노래를 통해 밝혀졌다. 추억.
"우리 집 앞에도 니가 살아있는데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야"
나는 아무리 그 자를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따라오는 것을 막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오히려 편해졌다. 이게 나구나. 추억이 어쩔 수 없이 뒤를 밟는 사람이구나. 녀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졌고 나도 감당할 수 있게 성장해갔다. 글을 쓰고 음악을 더 많이 듣는 것이 그 과정이었다. 먼데이키즈 음악은 점점 듣지 않게 되었다. 다른 음악이 너무 많았고 먼데이키즈도 멤버 변동과 입대 등으로 공백기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스물여섯.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 커뮤니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축제에 먼데이키즈가 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나는 반가웠지만 커뮤니티의 반응은 의외로 갈렸다. 스무 살 초반들은 먼데이키즈가 누구야?라고 의문을 표했고 나와 비슷한 스무 살 중반들은 "우리 중학생 때 전설적인 발라드 그룹이었어!"라고 변호를 시작했다. 나는 세월의 변화를 체감하며 오랜만에 먼데이키즈의 음악을 들었다. 신곡도 많이 나와있었다. 솔로로 전향한 먼데이키즈는 계속해서 추억을 노래하고 있었다. 행동하는구나. 나는 앞에 놓인 공책을 보았다. 많은 글을 써왔고 계속 쓰는 중이었다. 나도 행동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미행"을 들어보았다. 뒤돌아보니 추억도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