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의 기쁨과 슬픔

by 도우너

귀촌해서 산 속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선배가 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장관이고 직접 지은 건물도 감각적이고 주인장 역시 스타일리쉬해서 영업이 잘 되었다. 금새 슈퍼호스트가 되었고 성수기에는 예약도 꽉 차고 매출도 좋았다. 그렇게 몇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랜만에 통화해보니 숙소를 매물로 내놓았다고 했다. 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잠시 쉬며 그간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며 느꼈던 희노애락을 글로 써보라고 권했더니 선배가 했던 말.


"'(怒)'밖에 없어."


잘 생각해봐라, 분명 희와 락이 떠오를 것이라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히 '있었다 하더라도 없다'는 철학적 대답을 남겼다. 누군가에게는 부럽기 그지없는 숲 속의 낭만이 본인에게는 지독한 노여움만 남는 일이 되었다. 선배의 말을 전부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나역시 자영업 10년차인지라 어느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책방을 하고 독서모임을 하는 일 역시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일로 보일 수 있지만 나 역시 나름의 희노애락이 있다. 그렇게 선배와의 전화를 끊고 독서모임의 기쁨과 슬픔을 떠올려본다. 다행히 난 아직 노만 남지는 않았다.


독서모임의 기쁨


독서모임하며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일까. 사업적 입장에서 볼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책도 많이 판매되고 매출이 올라서 좋겠다 싶지만 그런 기쁨은 일시적이다. 물론 이 기쁨도 소중하지만 여기에 일희일비하면 오래 못한다. 사람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독서모임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서 변화가 보이기 시작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 누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던가. 바뀌기 힘들어서 그렇지, 좀 많이 힘들어서 그렇지 바뀔 수 있다. 독서모임에서 그런 변화의 순간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즉, 메타노이아(Metanoia). 그리스어로 '넘어서다'라는 뜻의 메타(meta)와 '마음, 생각, 인식'을 뜻하는 노이아(noia)가 합쳐져 '생각의 변화' 또는 '마음의 전환'을 의미 한다. 기독교에서는 주로 회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삶의 방향 자체를 하나님께로 돌린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종교를 떠나 독서모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모임에 참여한 기간과 상관없다. 성경에서 처음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자는 구절이 있는데 모임에서도 그렇다. 참여한지 오래되어서 저 사람은 참 변하지 않겠다 싶은 사람이 뒤늦게 깨지기도 하고 온지 얼마 안된 사람이 바로 변화하기도 한다. 복음은 따로 복음이 있는게 아니라 내가 변화하면 그 어떤 텍스트도 '복된 소식'이 된다. 그런 메타노이아의 순간들을 모임원들이 지켜보고 서로 지지해주는 모습들이 반면교사가 된다. 이런 모임에서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모임이 파생되어 삼삼오오 따로 모여 공부하기도 하고 또다른 공동체가 생긴다. 올해 봄에는 어떤 기운이 모였는지 독서모임에서 그런 변화들을 자주 목격했다. 최근 모임마다 생기는 이 기쁨들을 간직하느라 마음이 벅찬 나날이었다. 그 가능성을 알기에 모임에서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 변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역할을 자처하곤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독서모임의 슬픔과 연결된다.

독서모임의 슬픔


독서모임에 한두번 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냥 힐링하러, 취미 삼아 원데이 독서모임에 오는 분들은 충분히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하지만 어떤 주제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래 지속하는 독서모임에서는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를 하게된다. 그 기대가 서로를 힘들게 한다. 모임에 오래 참여할수록 수동적으로 임하는 사람들, 책을 읽지 않고 건성건성 오는 이들, 지적인 자극만을 추구하고 앎과 삶이 괴리되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 쌓이기도 한다. 이것이 내 기쁨과 슬픔, 동전의 앞뒤였다. 또한 독서모임 역시 결국 사람 간의 만남이기에 그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오가고 그 안에서 부대낌이 있다. 즐거울 때도 있지만 괴로울 때도 있다. 학생이라면 공부, 직장인이라면 업무가 가장 큰 고민거리일 것 같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부분의 고민은 결국 ‘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를 떠나 살아갈 수 없고, 독서모임 역시 관계기반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모임에서 나누었던 말들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거나 오해가 생겨 흐지부지 사라져버린 모임들을 떠올리면 슬프다. 그런 순간 그 안에서 미숙했던 나를 돌아보면 괴롭기도 하다.


세상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에 이 정도는 고통이 아니라는 걸 안다.

불교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모든 일은 고생이고, 그 안에서 괴로움은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면, 독서모임에서 겪는 이런 감정들도 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독서모임은 내게 삶의 거울이자 관계의 실험장이었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그렇게 희노애락을 겪으며 함께 읽고 함께 살아가는 여정 속에서, 예전에는 기쁨이었던 것이 슬픔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다시 기쁨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을 겪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든 것이 별일 아닌 것이 되어간다. 모임을 지속할 수록 점점 더 관계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연연하지 않을수록 관계는 더 좋아지고 오래간다.


독서모임 10년 정도 하니 이제서야 기쁨과 슬픔을 거리를 두고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렷이 알게되고 좀 넘어설 수 있게 된 것 같다. 기쁨과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것, 계속 하고 싶은 이유와 하기 싫은 이유, 그 모든 이유가 이유가 되지 않는 것. 어느 덧 나에게는 기쁨과 슬픔보다 '그냥 닥치고 계속해서 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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