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11. 2019

뭘 써야 할 지 막막하지만

쓰고는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텅 빈 백지, 깜박이는 커서의 압박은 때로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몇 자 끄적여 보지만 신통치 않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때마침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가 시작되면,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은 어느새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TV 앞에 코를 박고 열심히 화면만 응시하게 된다. 결국 야심 차게 시작한 글쓰기 프로젝트는 오늘도 허사로 돌아간다. 힘든 일보다는 쉽고 재밌는 일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나중에 쓰면 되지. 시간은 많아” “잠깐만 머리를 식히고 다시 시작하면 더 잘 써질 거야” 갖가지 이유를 대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악마의 속삭임은 참으로 달콤하다.     


초등학생 때 쓴 일기는 한결같이 ‘나는 오늘로~~’로 시작해서 ‘참 재미있었다’ 내지는 ‘즐거운 하루였다’로 마감하곤 했다. '다시는 ~~ 하지 않겠다' 역시 자주 등장하는 결말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매일 써야 했던 일기는 고역이었다. 아무리 호기심 천국인 어린아이의 세상일지라도 매일 매일이 환상특급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일 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개학이 코 앞에 다가오고 선생님의 불호령을 떠올리며 한 달치의 밀린 일기를 써야 했던 중노동의 기억이 떠오른다. 중학생이 되어 일기가 더 이상 강제성을 띄지 않게 되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을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글감 찾기란 어린아이에게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도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중에는 당장 글로 옮겨 적고 싶을 만큼 드라마틱한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한 뒤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한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살피다 보면 어느새 하루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누구나 평온한 일상, 큰 변화 없는 생활을 원하지만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드라마틱한 사건을 갈구하게 된다.  무탈한 삶에 감사해야 마땅하지만 글을 쓰려고 마음 없은 이상 지루한 삶은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소설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컴퓨터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스치는 바람 한 줄기.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시심(詩心)이 동해 정갈한 시 한 수, 감성 에세이 한편을 뚝딱 써 내는 필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사정이 옹색하다. 무언가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라야 비로소 겨우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평생을 써봐야 고작 몇 편 되지 않는 빈약한 작품세계만 남게 된다.    


글을 쓰고자 처음 마음먹었을 때 글감 부족으로 고민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했다. 그 결과 요즘 내가 주로 활용하는 방법은 메모 노트다. 핸드폰이나 아이패드의 메모장을 이용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간단하게 메모해 둔다. 한 문장일 때도 있고 한 단어일 때도 있지만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메모를 한다.

평소 책을 읽을 때 귀중품 다루듯 곱게 보지 않는다. 검은 색펜으로 밑줄 긋기는 기본이고 형광펜, 붉은색 펜 등으로 중요 문구나 마음에 남는 구절에 일일이 표시를 한다. 영화 속 대사도 잊지 않고 머리속 서랍에 저장해 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정리하는 마음으로 밑줄 그어 둔 문장을 메모장에  옮겨 적는다. 머릿 속 서랍장의 영화 대사도 메모장으로 이동한다. 마음이 더 동하면 짧은 생각까지 보탠다. 작가들의 아름다운 문장, 엑기스만 모아놓은 글이 메모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비밀의 무기를 장착한 기분이다. 일명 문장 수집이다. 친구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이나 전철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메모장을 꺼내 다시 읽어본다. 주옥같은 문장을 남긴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고, 메모를 읽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감탄하면서 나만의 기쁨에 젖어든다. 차곡차곡 모아둔 메모 부스러기들은 나중에 글을 쓸 때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메모장을 뒤적이다가 소설의 한 문장에 나오는 ‘의정부 부대찌개’ 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자. 부대찌개는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누구나 한두 번쯤은 먹어본 음식이다. 부대찌개와 관련된 개인적인 일화나 부대찌개의 맛,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 그때 나눴던 대화, 등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된다. 한 달 전의 일이든, 5년 전의 일이든,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기억너머 아스라이 사라졌던 추억이 쓰는 행위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나도 작가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다.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문장은 어느 새 한 꼭지의 글로 완성된다. 메모장이 주는 선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여’라는 메모도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와 관련된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이 감정이든, 젊은 아버지였든, 나이 들어 노쇠한 모습의 아버지였든 간에 상관없다. 오래된 기억의 창고에서 불러낸 아버지와의 일화가 정제된 글로 재탄생 한다. 하지 못한 말, 하고 싶었던 말을 글로 옮겨적는 순간 오랜 시간 끊어졌던 아버지와의  연결고리가 다시금 이어질는지 모른다. 가족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건 덤이다.     


이 외에도 글감을 찾는 방법은 많다. 책과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자주 영화를 챙겨 보는 편이고 책은 늘 읽고 있으니 글쓰기의 소재로 이만한 게 없다. 리뷰를 쓰는 동안 글쓰기의 기본 요소인 요약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내용 요약만으로도 반 페이지 정도는 쉽게 채울 수 있다. 자신만의 느낌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글에 생생함을 불어넣으면 리뷰를 넘어 한 편의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 나아가 날카로운 비판과 통찰이 더해지만 비평이나 칼럼으로 수준이 업그레이드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써 놓은 리뷰는 다른 글을 쓸 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주제가 비슷한 글을 쓸 때 미리 써 두었던 영화나 책의 리뷰를 적시적소에 배치하면 글이 한층 깊어지고 넓어진다. 읽을거리 풍부한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 된다.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그때그때 기록해 두면 이 또한 좋은 글감이 된다. 직장 상사 때문에 화났던 일, 아이나 남편으로 인에 속 끓였던 일 등도 모두 글쓰기의 재료다. 일상의 사건을 글로 옮기게 되면 억눌린 감정의 정화작업이 일어난다.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분노의 감정이나 억울한 심정을 안전하게 표출할 수 있는 글의 매력 덕분이다. 글을 쓰면서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옹졸함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여유가 생겨나기도 한다.  각자의 고유한 삶의 경험을 글로 옮겨보자. 사람 사는 이야기만 한 좋은 글감은 없다.   


여행의 경험도 놓치지 말자.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의 삶 속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세상과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생생한 감정을 기록으로 남겨보자. 글감이 넘쳐나는 여행지에서 하루를 마감할 때면 그 날의 사건과 감정을 메모 형식으로 간단하게 남겨두자.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한 뒤 찬찬히 메모장을 훑으며 나만의 여행기를 완성해 보자.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내면의 여행이라는 또 하나의 여행으로 떠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시집이나 에세이의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문장을 고른 후 이어서 글을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원저자의 글과는 전혀 다른 자기만의 색깔이 입혀진 글이 완성된다. 술술 잘 써지면 다행이지만 중간에 막히거나 생각만큼 글이 매끄럽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다른 문장을 골라서 새로 이어 쓰면 된다. 이 외에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느낌을 적어본다 든가 최근에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감정,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 학창시절의 추억과 사건사고 등 모든 것이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 덕분에 글을 쓸 시간은 부족할지라도 소재 부족으로 시달리는 일은 이제 없어졌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글쓰기의 여정을 떠나보자.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