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04. 2019

복문보다 단문으로,

소설가 김훈은 “언젠가 나는 주어와 동사 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쓰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수사적 장치를 배제한 채 주어와 동사라는 뼈대만 가지고 사실을 보도하듯 쓴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김훈의 글은 간결하지만 힘이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고백을 한 데는 기본적인 뼈대만 남기고 부수적인 것은 완벽히 배제한 글, 그러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완벽에 가까운 글을 쓰고 싶다는 소설가로서 간절한 소망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단문이란 주어와 목적어와 술어로 이루어진 최소한의 골격만 갖춘 문장을 말한다. 단문으로 쓴 글은 간결하고 깔끔하다. 그래서 전달력이 있고 힘이 있다. 하지만 단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초보자의 경우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쓰다보면 글이 길어지고 나중에는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조차 잊어 버리게 된다. 


혼자서 일기처럼 썼던 예전 글을 보면 ‘무척이나’ ‘정말’ ‘매우’ 등의 부사를 남발하거나 ‘감동적이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등의 과도한 감정을 토로하는 문장, 이로 인해 글의 길이가 늘어진 복문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길고 복잡한 글이 폼나는 글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을 때 쓴 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문장에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의미전달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 버리게 된다. 복잡하고 긴 문장, 수사법의 남발로 자칫 신파로 흐르기 쉬운 글은 읽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주어와 동사는 연인처럼 붙어 다녀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주어와 동사가 멀어질수록, 그 사이는 많은 수식어로 채워지게 되고 글은 지저분해 지기 마련이다. 


한 문장에 하나의 메시지만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간결하게 써야 한다. 문장이 지나치게 길 경우 읽는 사람이 그 호흡을 따라가기 힘들어져서 지루하게 느끼게 되고 도중에 포기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수식어를 절제한 군더더기 없는 글이 깔끔하면서도 힘이 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생각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단문이 지닌 장점 이다. 이 외에도 단문을 쓰면 문법적으로 틀릴 일이 별로 없고 가독성이 좋아서 독자들이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길고 난해한 문장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국내 작가로는 구병모, 배수아가 있다. 


그저 형식상 써 두기만 하면 된다고 한 학년마다 이미 근무중인 교사들이 있으니 거기 배정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우며 그럼에도 당신을 눈엣 가시로 여기는 이들의 심신 평화를 위해 적절한 노력의 제스처를 보일 필요가 있어서일 뿐이라고 교감은 그랬었다. 

-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


이글에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여행이란 단어는 길이나 지도, 낯선 나라, 인상 깊고 아름다운 풍광, 새로운 문물, 혹은 새로운 자신, 두근거림이나 자유, 혹은 모험이나 떠남, 대개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현대인이 얻게 되는 어떤 종류의 비일상적 체험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단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적인 꿈, 고통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의 꿈, 혹은 정체불명의 그리움, 슬픔과 체념으로 가득한 발작국, 혹은 그러한 감정의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은밀하고도 슬픈 몽환과 동의어에 불과한 것이다.

- 배수아 <처음보는 유목민 여인> -


한 문장이 네다섯 줄 내지 여섯 줄에 이르기도 한다. 주어와 동사 사이는 헤어진 연인 만큼이나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뜻이 불분명하거나 지루하다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소설가의 힘이다. 화려한 복문을 쓰고도 의도한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소설가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종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이 길어지는 순간 뛰다가 다리가 꼬여 넘어지는 초보 마라토너처럼 글이 꼬이고 머리가 꼬이다가 결국은 생각까지 꼬이게 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단문만이 능사란 말은 물론 아니다. 계속되는 단문은 속도감 있게 읽힐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지루하게 반복되면 독자들이 피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지나친 끊어치기는 문장이 시작하자마자 끝남으로써 허무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나는 배수아도 좋고 구병모의 글도 좋아한다. 문장이 길고 짧은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글 속에 깊은 사유가 담겨 있어 좁은 경험의 한계치를 확장시켜 주는 글, 인식의 틀을 도끼처럼 낱낱이 부수는 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프레임을 제공해 주는 글이라면 어떤 글이라도 좋다. 다만 긴 문장으로 막힘없이, 유려하게, 쓸 수 있는 실력이 되기 전까지는 단문쓰기의 신공이 되는 게 우선이다. 단문이 정답은 아니지만 충분히 훈련된 단문은 글쓰기의 다음 단계로 통하는 열쇠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일단은 짧고 간결하게 쓰자. 단문과 복문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그 날까지...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이전 02화 첫문장으로 유혹하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