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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15. 2019

보여주는 글로 묘사하며

영화 <플랜맨> 속 주인공 정석은 강박장애를 앓고 있다.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 뒤 움직여야 마음이 편하다. 6시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나서 흐트러진 침대를 정돈한다. 6시 35분에 샤워를 하고 8시에 옷을 챙겨 입는다. 8시 30분에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면 8시 42분에는 반드시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 물건이 흐트러지면 곧바로 정리하고 지나가던 사람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병균이 묻을까 두려워 소독제를 마구 뿌린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영화 속에는 강박장애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지만 우리는 정석의 행동을 보는 동안 강박장애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글도 이렇게 쓰면 된다. 묘사하고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


만약 강박장애에 대해 이렇게 쓴다고 상상해 보자.


‘정석은 강박장애를 앓고 있다. 강박장애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때는 그만두고 싶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상태를 겪게 된다’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있지만 별로 와 닿지 않는다.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나서 한 말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은 이제 글쓰기의 대명제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럼 어떻게 하면 ‘보여 줄 수’ 있을까?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듯한 글이 있다. 글쓴이는 무척 화가 나 있는 듯 감정이 격해 있다. “너무 짜증이 났고 너무 속이 상했다.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너무’가 난무한 ‘너무’ 한 글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도하게 감정이 묻어 나는 글 앞에서 독자는 오히려 냉정해진다. ‘분노’를 강요하는 대신 그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보여주는 글이 독자를 진짜 분노하게 한다. 


노부모를 향한 자식의 마음속에는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한다. ‘근육이 모두 빠져나간 다리, 휘청거리는 걸음걸이, 늘어진 목살과 무기력한 표정’이란 문장 속에는 ‘세월의 무상함’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이미 ‘무상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똑똑하기도 하고 때로 감상적인 면도 있어” 탁월한’ ‘감상적’이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다. 뭘 보고 ‘좋아한다’는 건지 짐작이 가지도 않는다. 어떻게 ‘탁월’하고 어떻게 ‘감상적’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어휘 대신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적절한 형용사를 구사하면 된다. “어젯밤에 갑자기 그가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까지 30분을 달려왔는데 손에는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어” 막연하고 모호한 추상화가 눈에 확 들어오는 생생한 사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역시 마찬가지다. ‘사이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막연하고 짐작이 어렵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잔소리를 시작한 엄마를 대놓고 무시한 아이는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화가 난 엄마가 뭐라고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집을 나가 버렸다’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엄마와 사춘기 아들, 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지 않는가? 


한 문장만 더 소개한다. “외국 여행 중의 일이었다. 먹은 게 체했는지 그녀는 갑자기 배가 아파서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상황의 나열만 있을 뿐 절박함이나 생생함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달리기라면 뒤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로 운동신경과는 무관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샤인 볼트를 능가하는 번개 같은 솜씨로 질주했다. 길게 줄을 늘어 선 외국인들을 거의 떠밀다시피 한 뒤 화장실을 향해 번개처럼 뛰어들었다” 생리적 현상 앞에서 염치나 체면을 따질 겨를이 없는 절박한 심정이 두 번째 문장에서 더 잘 드러나지 않은가?  “그 여자는 말랐다” 대신에 “그녀의 몸무게는 40Kg이었다” 가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먹방이 유행이다. 출연자는 음식 맛을 본 후 제 각각 평가를 내린다. 단순히 “맛있어요!”라는 말에는 영혼이 없다. “국물이 시원하고 주 재료와 잘 어우러져 깊은 맛이 난다” 라든가 “치즈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닭갈비의 매운맛을 중화시켜 한결 부드러운 맛이 난다” 이 정도의 멘트는 해 줘야 시청자들이 그 프로그램을 재밌게 시청할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주제와 열정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세부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사진을 보듯 선명하고 분명한 어휘로 묘사한 글은 적게 써도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보여주는 글은 독자들에게 현장의 생생함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그저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할 말을 다할 수 있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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