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찾아온 느린 발걸음
2013년 겨울,
매서운 바람이 가게 문틈으로
스며들던 어느 날이었다.
한 녀석이 조용히
우리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야윈 몸, 피로에 지친 발걸음,
그 아이는 마치 세상의 모든 무게를
혼자 견뎌온 듯한 모습으로
가게 입구에 들어와 몸을 녹였다.
이 주변에서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TNR(길고양이 중성화)을
받고, 원래 살던 곳이 아닌
이곳으로 잘못 방사된 모양이었다.
자신의 영역을 잃고
낳선 곳에 홀로 내던져진 것이다.
"아저씨 같네"
처음 그 아이를 본 순간
내가 뱉은 말이었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
겁많아 보이는 둥근 눈
그리고 묘하게 인자해 보이는 표정,
마치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매튜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가게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여기고 있던
까칠이와 꼬꼬마에게 새로운 침입자의
등장은 반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은 이 새로운 친구를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아이의 온순하고
느린 성격이 위협적이지 않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을 만큼의 관용.
그렇게 그 아이는 조금씩
우리 가게의 일부가 되어갔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복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 집 셋째 나복이를 닮았다고 해서
나복이 2, 그래서 복투.
그리고 '복 too much'라는 의미도 담아서,
이 아이의 행복을 빌며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느 날 오후, 내가 빵을 먹고 있는데
복투가 다가와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마치 "나도 조금만 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 빵 먹는 고양이야?"
웃음이 나와서 빵 한 조각을 떼어주었다.
복투는 조심스럽게 받아먹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의 소소한 생복이 얼마나 따뜻했던지..
그런데 그 다음날,
복투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복투는 오지 않았다.
한 번도 빼먹은 적 없이 매일 찾아오던
그 아이가... 오질 않았다.
엄마와 나는 온갖 상상을 하며 걱정했다
그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어딘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건 아닐까,
혹시 어디 좁은 곳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5일째 되는 날,
초췌해진 모습으로 복투가 돌아왔다.
여전히 느린 걸음이었지만,
그 걸음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어딘가에 갇혀 있다가 겨우 빠져나온 것 같았다.
"이제 네가 원하면 가게에서 자도 돼"
더 이상 혼자 위험한 밤을 보내게 할 수 없었다.
정말 가게에서 잘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복투는 마치 원했다는 듯 정말 매일 밤
가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족스럽게 보냈다.
그리고 곧 까칠이와 꼬꼬마의 중성화가 끝나고
가게에 아이들만의 방이 완성되었을 때
세 아이는 자연스럽게 '이태원 삼총사'가 되었다
까칠한 까칠이, 쪼꼬맣지만 당찬 꼬꼬마
그리고 조금은 느린 복투,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조합이었다.
한동안 시간을 가지며 그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찾아왔다.
엄마 방의로의 합사,
이미 그곳에는 나돌이와 나군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태원 삼총사가 진짜 우리 가족이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복투를 처음 만났던 그 겨울밤을 생각하면,
때로는 가장 예상치 못한 만남이
가장 소중한 인연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느리고 조심스럽지만 꾸준히
우리의 곁을 지켜주는 복투
사랑은 때로는 이렇게 천천히,
느리게, 조용히 찾아온다. 복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