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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완벽주의자

천천히 걷기

by 지안

내게 열등감과 완벽주의는 한 세트와도 같은 것이었다. 난 뭐든 최고로 잘해서 꿀리지 않을 거야. 잘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애들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는 걸 보여줄 거야.


그러려면 난 늘 완벽해야만 했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공책의 네모 격자칸 안 점선에, 평행하게 똑바로 글씨를 쓰지 못하면 마음에 들 때까지, 노트가 뚫어질 때까지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던 아이였다. 글씨 한 줄을 쓰더라도 내가 반에서 제일 잘 써야만 직성이 풀렸다.


유년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세운 잔인하리만치 높은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려 했다. 난 그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성실한 정도라 여겼고, 남들도 나만큼은 강박과 스트레스를 느끼며 사는 줄 알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그동안 완벽을 좇기 위해 나 스스로를 얼마나 엄격하게 몰아붙였는지 깨달았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가 항상 ‘~해야 한다’라는 말투를 버릇처럼 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매사에 당위적 사고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처음 알았다. 선생님은 내가 가혹한 초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고, 이드(id)와 초자아(superego)의 개념을 설명해 주셨다.


“이드는 무의식적 본능이에요. 대비되는 개념인 초자아는 학습되는 것인데요, 어린아이는 아직 초자아가 없죠. 옳고 그름을 모르니까요. 양육자가 설명해줘야 하죠. ‘강아지를 함부로 만지거나 괴롭히면 안 돼. 강아지가 아파해.’라고요. 초자아는 이드를 인정하지 않고요, 자아를 감시하고 통제해요. 이를 테면 ‘공부 안 하고 놀러 가고 싶다’는 감정이 들면 ‘무슨 소리야.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 안 해?’라고 하는 거죠.”


“놀고 싶다는 감정을 초자아로 계속 누르고 통제하기만 하면 결국 병이 나버려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거네요?”


“네, 사람이 항상 효율적으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의 감정을 외면하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현재를 살 수 없게 돼요. 중요한 시험을 잘 끝내고 나서도 그 순간을 즐기는 게 아니라 바로 또 다음을 준비하죠. 늘 미래를 걱정하며 살게 되는 거예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그간의 난 그야말로 ‘초자아의 인간화’였다. 한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이 앞만 보며 달려왔고, 내 감정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살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근 방송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서 한 배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훌륭한 연기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난 이렇게까지 열심히 준비해 오는데 왜 너희는 나만큼 열심히 안 해와?”


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 배우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던 건, 예전의 내가 딱 그랬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겪어보기 전까지는, 난 그저 최선을 다하면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되는 줄 알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나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었다.


그리고 회사를 관두고 예기치 못한 일들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나는 서른다섯을 먹고서야 알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동안 내가 최선을 다해 온전히 내 노력으로 일구어낸 성취라고 믿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수많은 변수와 운이 얽혀 만들어진 결과였다는 것도.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실패 한 번 없는 삶을 살아왔던 건 요행에 가까운 행운이었다. 세상사는 결코 내 의지대로만 흘러가주지 않는다.


이제는 매사에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걸 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있어도 ‘저 사람은 왜 저러지?’가 아니라, ‘저 사람은 내가 뒤늦게야 깨달은 걸 일찌감치 알고 현명히 힘 배분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꽤 많이 쓰리고 아팠던 자기반성과 인정의 시간들을 지나면서,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늘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했던 ‘효율’을 조금은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얼마 전 다녀온 2박 3일의 여행도, 숙소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났다.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닐 일이지만, 모든 동선을 분 단위로 짜놓아야 마음이 편했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어딜 가든 최적 경로를 검색해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혹은 화장실이 매우 급한 사람처럼) 최대치의 보폭으로 경보하듯 걸어 다녔던 나는, 이제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붕어빵도 한 봉지 사는 여유를 즐긴다. 붕어빵을 사러 가는 길에는 '오늘 열었겠지?' 하며 괜히 설렌다. 붕어빵 구매에 성공하면 뜨끈한 붕어빵을 하나 꺼내 입에 물고 털레털레 동네를 거닐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를 살아내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소소하고 무해한 감정들을 차근히 모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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