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시작
엄마와의 관계가 개선되고, 그동안 날 괴롭혀온 열등감과 완벽주의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면서 많이 편안해졌다. 확실히 이전보다 나 자신을 덜 몰아붙이고, 덜 미워하게 되었다.
마음이 조금 나아지자, 모범생의 관성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너 이제 좀 괜찮아졌으니 다시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감정이 내 발목을 잡았다. 다시 도전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에 가까운 두려움이었다. 또 실패할까 봐, 더 큰 좌절을 느낄까 봐, 다시 무너질까 봐 너무 겁이 났다. 어찌 보면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동안의 삶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쉬어도 편히 쉬지 못했다. 무언가 하자니 두렵고, 안 하자니 불편했다. 그렇게 이도 저도 못한 채 좌불안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선생님은 이 모든 감정의 근원은 결국 ‘불안’이며,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멀리 돌아가면 설령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두려움은 더 커진다고 했다. 그와 달리 피하지 않고 곁을 지나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직접 경험하면, 그제야 비로소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만약에라도 다시 실패한다면 예전보다 더 큰 좌절을 느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조용히 물었다.
“정말 실패했던 게 맞나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성공과 실패를 나눌 객관적인 기준이 있었나요?”
“… 아니요. 객관적인 건… 없었죠.”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실패는 결국 내가 멋대로 ‘규정’해버린 것이었다. 애초에 ‘객관적인 지표’ 같은 건 없었다. 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고, 그걸 서둘러 ‘실패’라 이름 붙인 건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한때 내 전부를 부정해 버리는 것 같았던 실패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그건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나의 계획에서 조금 어긋난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다. 지난 몇 년간 반복된 내상에 휘청이다가, 별것 아닌 펀치 한 방에 주저앉아버렸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심하게 아팠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예전의 추진력은 사라진 듯했고, 무언가 시작해 보려다가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는 ‘그게 되겠어?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하고 결론짓는 일을 반복했다. 나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시 좌절한다면 견뎌낼 수 있을까. 여섯 달 가까이 불안에 잠식된 채 같은 생각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안을 느껴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지금껏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 나는 지금까지 불안조차 외면하며 살아왔던 거구나.
“지안님은 다른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100%가 될 순 없어요.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좋은 결과’가 성공의 기준이 되어선 안 돼요.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냈느냐예요.”
조금 풀이 죽은 내 표정을 보던 선생님은 온화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다 했다면,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우리 치료의 종료예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모든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지안님은 늘 무슨 일이든 바로 해결하려 해왔잖아요. 하지만 때로는 그냥 미뤄둘 수도 있어야 해요.”
그렇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불안’이라는 낯선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과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 걱정 따위는 무작정 미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제야 편한 마음으로 ‘제대로’ 쉴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 신선한 음식을 요리해 먹고, 수영을 다니며, 이따금 동네 브런치집에 가 햇볕을 쬐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려보는 진짜 휴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회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