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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오롯이 혼자인 삶

by 지안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엄마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여러 일들이 누적되어 삶이 무너지고 있던 와중에 엄마마저 나를 힘들게 하자 난 그대로 주저앉아버렸고, 살 이유를 잃고 말았다. 선생님은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이 ‘엄마와의 감정적 분리’라고 하셨다.


엄마에 대한 감정은 미움과 연민 사이를 널뛰듯 오갔다. 무심코 냉장고를 열었다가 엄마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면서도 날 먹이겠다고 해준 음식이 한가득 채워져 있는 걸 보면 눈물이 왈칵 났다가, 엄마가 또 날 들들 볶는 날이면 엄마를 두고 이민이라도 가버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날은 나도 돈이 없어서 괴로운데 엄마는 얼마나 더 힘들까, 그런 생각에 엄마를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열정이 불타오르곤 했다. 그러다가도 내가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압도되어 숨이 막히기도 했다. 엄마는 내게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이자, 혼란 그 자체였다.


“그동안 어머니의 어떤 점이 지안 님을 가장 힘들게 했나요?”


“엄마가 평생 저한테 한 말이 있어요. ‘내가 너한테도 못하면 누구한테 말해’였어요. 제가 초등학생 일 때부터 아빠에 대한 온갖 얘기를 다 했어요. 엄마는 아빠와의 관계에선 피해자였지만 저한테는 가해자였어요. 평생을 아빠라는 사람을 좋아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는, 제가 아빠에 대해 뭐라고 하면 ‘그래도 네 아빠잖아. 왜 그렇게 미워하니?’라고 해요. 그럴 때마다 정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껴요. ‘도대체 나한테 뭐 어쩌라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네, 그건 정말 어머님이 잘못하신 거예요.”


“제가 엄마에게 당한 것이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걸, 불과 몇 년 전에 알았어요. ‘너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을 평생 듣고 살아서, 엄마의 불행한 삶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었어요. 이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자각하게 된 건,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랑 단둘이 살면서부터였어요. 가까이서 엄마를 지켜보다 보니, ‘정말 이 관계가 100% 일방적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마냥 불쌍하기만 했던 엄마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원망도 커지고요.”


“그런데도 어머니와 거리를 두는 게 힘든 이유가 뭘까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엄마는 저한테 불쌍한 사람이라고 각인이 되어버려서요. 그리고 지금 엄마의 상황이 객관적으로도 많이 힘든 게 맞으니까요. 아파서 외출도 거의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드니까요. 엄마가 집에 혼자 있을 걸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고 짠해요.”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엄마한테 얘기했거든요. 살기 싫고, 더는 살 이유도 없다고. 이제 다 내려놨고, 돈 많이 벌려고 노력도 안 할 거라고. 그러니까 엄마도 더 이상 나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엄마가 실망했을 거 같아서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말끝마다 ‘네가 나의 유일한 희망이지.’, ‘내가 사주에 먹을 복을 타고났대. 그게 뭐겠어 너지.’ 같은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몇 년간 나를 그렇게 괴롭혔으니 엄마도 좀 힘들어봐라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제가 이상한 사람 같아요.”


“누구나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요.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예요. 독립이라는 게 ‘도움을 주지 말라’ 거나 ‘아예 보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감정적 독립이란 건, 엄마와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두고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엄마의 상황과는 별개로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말이 머릿속에 강렬히 박혔다. 그랬다. 엄마의 상황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두고 난 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삶에 얽매여 내 모든 일상을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난 왜 이제껏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난 선생님의 말씀을 천천히 곱씹으며 생각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그런 나를 잠시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이내 말씀을 이어가셨다.


“어머님 또한 어머님만의 방법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실 수 있어야 해요. 지안 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어머니가 그렇게 심심하지만은 않으실 거예요. 어머님도 친구분들도 있으시고, 나름대로의 일상이 있으실 거니까요. 어머님은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내실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하다고 믿고, 맡겨 드려야 해요.”


몇 달에 걸쳐 나는 엄마로부터 감정적으로 독립하는 연습에 집중했다. 중간중간 엄마와 다툼도 있었고, 그때마다 마음이 심하게 동요되어 우울한 감정이 악화될 때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연락을 의식적으로 줄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외면하는 내가 너무 냉정하고 못된 것 같아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날 붙잡아주셨다. 죄책감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엄마를 나에게서 분리해 내는 일에도 점차 익숙해져 갔다.


엄마도 조금씩 우리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예전엔 별 것 아닌 일로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나를 지치게 했는데, 내가 병원에 다닌다는 사실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달라진 내 태도를 느낀 건지 점차 연락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도, 예전처럼 붙잡아두지 않고 얼른 끊으려 애쓰는 게 느껴졌다. 그런 엄마가 낯설기도 하고 이게 정말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엄마의 노력이 고마웠다.


그러다 엄마와의 관계가 크게 전환점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서울의 대학 병원에 이른 아침 진료가 잡혀있어, 엄마가 전날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한 것이었다. 마침 남편은 친구와 여행 중이라 집에는 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는 자연스럽게 깊어졌고, 결국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 다 엉엉 울며 그동안의 회포를 털어놓게 되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무엇보다도 ‘네가 힘든 게 뭐가 있냐’는 엄마의 말이 나에겐 가장 큰 상처였는데, 그게 잘못된 말이었다는 걸 엄마가 인정해 주는 순간 가슴속에 맺혀있던 단단한 응어리가 풀렸다. 엄마에 대한 나쁜 감정도 한꺼번에 많이 사라졌다. 나를 몰아붙이고 악쓰던 엄마가 아니라, 아프기 전의 '진짜 우리 엄마'가 돌아온 것 같았다.


“너 같은 딸 없는 거 나도 알아. 엄마가 더 이상 너 힘들게 안 할게. 이제 편하게 살아.”


‘편하게 살아.’


그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에게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요즘 엄마와 나는 전에 없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를 걱정하고 지지하면서도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적정 거리를 두려는 노력이 상대를 위한 더 큰 배려라는 걸 알았다. 그게 훨씬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서른다섯이 넘은 지금, 나는 내 안의 엄마를 놓아주고 오롯이 혼자인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서 독립해, 반쪽짜리 어른에서 한 명의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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