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는지도 모르겠어
고개만 돌리면 어디에나 영웅이의 흔적이 있었다. 무심코 냉장고를 열었다가 영웅이 약봉지를 보고 울고, 화장실에 가서는 영웅이 샴푸를 보고 울었다. 온 집안이 지뢰밭이었다. 그렇다고 치우기는 싫었다. 행여 영웅이의 냄새가 옅어질까 봐 건드리지도 않고 뭐든 그대로 두었다.
한 달 가까이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울기만 하며 지냈다. 사람한테서 이렇게까지 눈물이 나올 수 있구나 신기할 정도였다. 멈추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눈물에 몸도 마음도 바닥을 찍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몰두할 일이 필요했다.
그러다 방 한가운데, 치우지 못한 채 그대로 놓여 있던 영웅이의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영웅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잘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원단 시장을 뒤져 내가 직접 만들어주었던 담요였다. 난 노견들을 위해 강아지 담요를 만들어 팔아보기로 결심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제품 생산, 촬영, 라벨, 패키지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밀어붙였다. 매일을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망부석처럼 앉아 최소 15시간씩을 일했다. 일에 미쳐있는 동안만큼은 영웅이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난 살기 위해 나를 더 몰아붙였다.
그렇게 제품을 출시했지만 애석하게도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을 해치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몇 년을 기다리다 마침내 시작한 일인데, 이 정도 결과밖에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더 잘 해내야만 했다.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창피했다.
영웅이가 살아 있을 땐, 난 도대체 언제쯤 일을 할 수 있게 될까 싶어 영웅이를 원망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영웅이가 떠난 뒤엔, 드디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잠깐이나마 안도감이 스치기도 했었다. 그러니 더더욱 잘 해냈어야 했다. 고작 이걸 하려고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용납이 안 됐다. 영웅이에게 한없이 죄스러웠다.
어떻게 발버둥을 친들 충분한 시간 없이 아픔은 결코 소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전한 애도 없이 가슴속 돌의 크기는 절대 작아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정하게 되자 허무함이 몰려왔다. 난 밥은 물론이고 물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속이 울렁거려 모조리 게워냈다. 링거로 버틴 지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어지러움 때문에 아예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되었다. 온 세상이 빙빙 돌았다. 결국 남편의 부축을 받아 실려가다시피 응급실에 갔다.
차가운 응급실 침대에 누워 링거 줄을 주렁주렁 달고 꼼짝없이 누워있자니 1분이 한 시간 같았다. 천장에 빼곡히 달린 형광등이 다 나만 비추는 것 같았다. 하얗다 못해 차갑게 내려 꽂히는 불빛에 눈을 감아도 눈이 부셨다. 억지로 잠을 청해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약이 들어가면서 어지럼증이 조금 가라앉아 나올 때는 혼자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집에 돌아와 남편이 포장해 온 죽을 먹어보려 했지만, 두어 숟갈 넘기고는 또 다 게워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기운이 빠지면서 천장이 다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아파서 눈물이 나는 건지, 짜증이 나서 눈물이 나는 건지, 이제는 왜 우는지도 알 수 없었다.
창 밖 남산타워의 형형색색의 불빛이 흐릿한 시야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 정말이지 딱 죽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