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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꼭 다시 만나

by 지안

영웅이는 무서운 속도로 나빠져갔다.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병세가 추가됐다. 만성신부전에 이어 치아의 염증이 차올라 얼굴로 혹이 올라오는 치주농양에서부터, 항문낭파열까지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병원에 가는 것마저 힘들어져 선생님께 수액 놓는 법을 배워 집에서 직접 맞춰주었다.


“네가 많이 힘들면 가도 돼. 누나 걱정돼서 못 가는 거면 걱정하지 말고 가도 돼. 누나 씩씩하게 잘 지낼게.”


12월 둘째 주에 들어서면서 영웅이는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평생 윤기 나던 새까만 코는 퍼석하게 갈라졌고, 콧속은 각질로 꽉 막혔다. 나의 매일 아침 루틴에는 신생아용 면봉으로 영웅이의 콧속을 훑어 숨길을 조금이나마 뚫어주는 것과, 옆에 붙어 앉아 힘겨운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분당 호흡 횟수를 기록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주변 어른들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곡기를 끊으면 갈 때가 된 거라고, 더 이상 붙잡고 있는 건 영웅이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난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밥 냄새만 맡으면 고개를 번쩍 들어 밥그릇을 비우던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흘째가 지나가면서, 영웅이는 밥은 물론 물도 넘기지 못했다. 호흡은 눈에 띄게 가빠져갔고, 콧속은 점점 더 마르고 부어올라 거의 막혀버렸다. 하루아침에 남아 있던 마지막 생기마저 빠져나갔다. 손만 대도 부서질 듯, 마른 나뭇잎 같았다. 밤에는 누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누워 잠만 자던 녀석이 고통에 밤잠을 설치고 배변 실수도 하기 시작했다. 겨울밤, 욕실의 차가운 타일 바닥에 맨몸으로 앉아 축 쳐진 녀석을 들쳐 안고 씻기다가, 더는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 엉엉 울었다.


다음날 아침, 동물병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간신히 말을 뱉었다.


“선생님, 이제 영웅이 보내주려고요. 내일 아침 병원 여는 시간에 맞춰 갈게요.”


전화를 끊고 영웅이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영웅이 옆에 웅크리고 앉아 손을 잡고, 멀어버린 귀에 대고 하루 종일 속삭였다.


“누나한테 와줘서 고마웠어. 사랑해. 우리 나중에 꼭 만나.”


영웅이는 내가 열여덟 살 때 우리 집에 와, 열여덟 해를 함께했다. 녀석을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마리의 새끼 강아지들 중 유난히 활발하던 녀석을 안아 들자, 내 배와 가슴을 타고 올라 온 얼굴에 뽀뽀를 해주던 기억. 너무 작아 행여 부서질까 조심조심 품고 집으로 오던 차 안. 그렇게 나의 대학 입학, 취업, 결혼까지 내 20대의 거의 모든 순간에 녀석이 함께 있었다. 어느새 녀석은 18살이 되고, 나는 서른 중반을 넘겨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영웅이를 위해 내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았다.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1년을 꼬박 영웅이를 돌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외식 한 번을 마음 편히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영웅이를 보내도 후회는 없을 거라 믿었다. 어리석었다.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했던 것, 배변 실수에 짜증 냈던 것, 약값이 비싸다고 부담스러워했던 것, 맛있는 간식 하나 주지 못하고 맛없는 처방식 사료만 먹였던 것이 가슴에 사무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불을 끄지 않았다. 영웅이를 꼭 껴안고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날은 밝았다.


그렇게 영웅이는 열여덟 해를 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22년 12월 14일, 나의 영웅이가 내 곁을 떠난 날, 하루 종일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앞으로 난 눈 오는 날을 좋아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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