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장

왜 이렇게 된 걸까

by 지안

그렇게 나는 완전히 고장이 나버렸다.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밥도 먹지 않고 씻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우는 날이 많았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냥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통 없이 단 번에 끝내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루라도 더 있다가는 내가 정말 무슨 일을 칠 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서연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언니 친구분 중에 정신과 의사 있다고 했지. 나 그분 좀 연결해 줘.”


언니는 나에게 현재 어떤 상태인지 차분히 물은 뒤 전화를 끊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언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바로 다음 날로 진료가 잡혔다.


23년도 4월, 나는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몇 가지 간단한 설문을 마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방에서 직사각형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거나 낯설진 않았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 조금은 편했다.


첫마디를 떼면서부터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예전에는 힘이 들었어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극복할 이유가 없다.. 힘들어 죽겠는데 이걸 이겨내서 뭐가 있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난 고장 난 것 같고. 영혼이 파괴되었다고 느껴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 5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어요. 엄마는 많이 아프고요. 그래서 제가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지난 몇 년 간 오로지 사업해서 성공해야지, 내가 다 극복할 거야 그런 생각에 휩싸여있었어요. 그런데 계속 의도치 않은 일들이 생기면서 타격을 입고. 이젠 더 버틸 힘이 없어요. 그냥 다 그만하고 싶어 졌어요.”


선생님은 휴지를 건네주시고 내가 말을 이어나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셨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불화가 심했어요. 올해 초에서야 완전히 이혼하시고 정리가 됐고요. 협의 이혼이었지만 현실적인 돈 문제나 그런 것들 때문에 옆에서 계속 시달렸어요. 아빠는 엄마나 저를 때린다거나 그런 건 없었는데 부부싸움을 심하게 할 때마다 집을 때려 부쉈어요. 18년도 1월에는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아픈 와중에도 아빠랑은 사이가 계속 안 좋았는데 엄만 그걸 저한테 풀었어요. 엄마는 아픈 사람이니까 내가 다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게 5년 넘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엄마가 항암 약 먹는 게 곧 끝나거든요. 그동안 엄마 살리려고 참았는데 이젠.. 내가 죽을 것 같아요.”


성장 과정에서의 상처,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너덜너덜해진 마음, 퇴사 후 바닥을 친 자존감까지- 나는 꺼이꺼이 울면서도 그동안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 50여 분 동안을 펑펑 울고 나왔다. 신기하게도 창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꽤 후련했다. 내가 고장 나버렸다고 선언해 버리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중증도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망상이 있었다면 즉시 입원을 해야 하는 정도라고 했다. 망상 증상은 없기에 입원 없이 내원 상담과 투약을 병행해 치료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후 1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선생님을 만났다. 중간중간 한 번씩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는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집을 나서는 게 힘에 부쳤지만, 지각을 할지언정 건너뛴 적은 없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그 30분은 내겐 산소호흡기와도 같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빼먹을 수 없었다.


첫 세 달 동안은 거의 매번 아주 많이 울었다. 힘든 기억이 떠올라서 울고, 망가져버린 내가 불쌍해서 울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분해서 울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15화빙글빙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