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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오 Mar 18. 2021

[메오만의 방_4] 그림책 '인생은 지금'을 읽고

두 손을 꼭 잡은 노부부의 고상한 아름다움

서평 


인생은 지금』 원제  Ora o mai piu (Now or Never)

다비드 칼리 글 세실리아 페리 그림 / 28/ 13,500원 오후의소묘 / 2021.03.15     


 만일 우리가 지금 순간, 즉, 현재를 지극히 편애한다면, 과연 미래를 향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회한의 농도는 얼마나 옅어질까? 행복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가 현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라면 이는 결코 사소한 질문이 아닐 것이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 다비드 칼리와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세실리아 페리의 만남으로 탄생한 그림책 『인생은 지금』. 앞표지 가운데 배치된 국문 제목 아래에는 원제 『Now or Never』가 적혀져 있다, 그리고 제목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갈라져 등 돌리고 있는 노년의 남녀. 등 뒤에 서 있는 서로를 발견해 허공이 아닌 서로를 감싸 안으면 좋겠는데 기어코 서로를 보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본문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은퇴라 외치며 이제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아내에게 이것저것 권하는 남자. 그림책 속 글은 남녀의 문답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남자의 간절함과는 달리 여자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안되는 이유를 찾아 미루고 피하기만 한다. 그동안 어떤 해일 같은 격변과 고통이 여자를 덮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름 모를 가늘고 작은 인생의 허무들이 쌓이고 커져 급기야는 여자를 눌러 가두어버린 것일까? 혹시 일만 하느라 많은 걸 유예해온 남자의 방식에 여자가 서운함을 느끼다 어느새 자신도 그런 삶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처럼 남자의 일방적인 제안과 귀찮아하는 여자의 거부가 반복되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러다 남자의 말 한마디로 그들의 대화는 절정을 지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지금도 흘러가고 있잖아. 가자!"


 색연필 특유의 감성적 색채 연출과 두 인물의 안정적 배치로 흘러가던 그림 구조는 여기서부터 작정했다는 듯 변한다. 마지막 거절을 하는 여자의 말과 함께 마치 회오리바람이 남녀의 집을 휩쓰는 듯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는데, 그림책 밖으로 '우당탕탕!'하고 우레와 같은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만 같다. 이후 펼쳐지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앞 페이지에서 속력감을 느꼈을 독자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심호흡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듯한 여백. 그 속에서 남녀는 붉은 빛을 띠고 서로를 꽉 끌어안는다.      

 이 가슴 저릿한 측은함은 무엇일까. 이 부부를 통해 부모님 세대를 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뜨거운 열망으로 달구어졌던 나의 젊은 날 버킷리스트가 하나씩 생각나서일 수도 있겠다.      

 책장을 덮는다.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 소멸에서 생명을 보듯, 일상에 떠밀려 잊힌 ‘지금’을 다시 바라본다. 그 '지금'을 열렬히 살아내고자 나를 일으켜 세운다. 기운이 솟는다. 그림책의 대위법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그림 작가의 강인한 그림 흡입력에 이끌려 작가들이 전하는 ‘인생은 지금’이라는 주제를 온전히 받아들여서일까. 원화의 은은한 색감이 빚어내는 따뜻한 정서에 힘입어 세상살이에 맞서고 일상을 지키느라 외면했던 내적 공간이 꽉 메워지는 것만 같다. 우리가 현재에 착념할 수 있게 돕고, 그로 인해 진정한 목적의식을 견지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그림책임이 분명하다.   

                                                                                                  / 글쓴이 - 메오 , 21년 04월 21일





감상 

 

 유칼립투스 오일을 오일 버너에 서너 방울 떨어뜨리고 조용히 초를 켰습니다. 작은 양초 위를 붉게 물들이며 일렁이는 손톱만 한 불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슬슬 유칼립투스 특유의 편안한 향이 코로 밀려듭니다. 이완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가만히 방을 둘러보다 어젯밤 배송받은 그림책을 집어 듭니다. 잔잔한 음악도 틀었어요.

 

 <인생은 지금 : Now or Never / 다비드 칼리 글, 세실리아 페리 그림 / 오후의 소묘>입니다.


 어딜 가나 손을 꼭 잡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부부는 참 기품이 있고 우아하며 아름다워요.

 이번 주 <줄리앤줄리아>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이십 대에 봤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화더군요. 뭐랄까, 그때는 가슴속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감상했다면 이제는 그보다 더 세심하게 영화 구석구석을 뜯어 간직해내는 느낌이랄까요. 같은 여자로서, 누군가의 아내로서 더 촘밀하게 감정이입을 하며 봤습니다. 참, 줄리아와 폴이 욕조 비누거품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의 일러스트는 결혼 후 내내 저희 집 현관에 붙어 있었어요. 그뿐만이던가요. 노부부가 그려진 일러스트 포스터, 엽서는 물론 사진도 모으는 저인걸요.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끝끝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이 들고 싶은 제 바람이 큰가 봅니다. 사랑스럽고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거든요. 곧 다가올 사십 대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보다 나의 육십 대가 더 어여쁘길 바란 달까요. 노부부를 떠올리니 영화 <인생 후르츠>와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책이, 이어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도 떠올랐어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다큐멘터리도요.


 다시 돌아와 <인생은 지금>입니다. 드디어 은퇴를 한 할아버지는 아내인 할머니에게 여행, 외국어, 악기, 밤낚시를 권해요. 요리를 배워볼까 물어보기도 하고요, 하루 종일 풀밭에 누워 구름을 보자고 말하기도 해요. 아내는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의 제안을 만류하며 미루고 미룹니다.  "일일이 이유가 필요해?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나랑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라고 할아버지가 얘기합니다. 그러다 할머니를 꽉 껴안아버리는 할아버지, 이 모습에서 애틋함을 넘어 절실함마저 느껴졌어요. "인생은 지금이라니까."라는 문구와 함께 펼쳐진 장면 속 이 노부부는 오톨바이를 타고 신나게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앞자리에서 앉아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할머니지요. 길고도 긴 세월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요? 자식을 낳아 기르셨을까요? 배경에 보이는 반려견은 이 부부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쉽지 않은 이 생을 잘 견디고 지내오셨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며 숭고한 존경심이 일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유보하며 사셨을 두 분이 매일 조금씩 같이 손잡고 모험하며, 즐겁고 유쾌한 일상을 보내시길 바랬습니다.


 문득 오래도록 미뤄왔던 숙원을 곰곰이 떠올려봅니다. 배우자의 의미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고요. '인생은 지금'이니까 남은 하루와 다가올 주말은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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