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창작 소설
그렇게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야구장을 나왔다.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수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민이는 회사를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며 두 시간 정도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혼자 바쁜 척은 다 한다며 오늘 술은 니가 다 사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그 녀석에게 그런 으름장은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수민이를 조금이라도 일찍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민우는 수민이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갔다. 날이 더워서인지 해수욕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저마다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식지 못한 열기들은 또 다른 열기를 찾아 백사장을 헤매고 있었고, 마침내 종착점을 찾은 그 열기들은 서로의 깊은 곳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백사장 맞은편에 위치한 가게로 들어가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가 쪽에는 바다를 보며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붐벼 자리가 많지 않아 창과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손님들이 많아 직원들은 매우 분주해 보였다. 바쁘게 지나가는 직원을 겨우 불러 맥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놓인 과자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
종업원은 맥주를 곧 가져다주었고 민우는 맥주를 마시며 내게 물었다.
“일 쉬니 좋냐? 뭐하면서 시간 보내냐?”
“ 그냥 뭐. 집에서 커피 마시면서 책 보고, 산책 다니고 가끔은 운동하러 가고. 그게 다지 뭐.”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는 게 누군가에게 숨겨야 할 흠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울은 현대인의 감기라고 많이 들어왔고 그 의견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기도 해서였다. 감기 걸렸냐고 굳이 물어보지도 않는데 세상 다 꺼질 듯하게 한숨을 쉬며 나 사실 감기 걸렸어...라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민우는 부러움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몇 달만이라도 쉬어 보고 싶다. 여유 있게 쉬면서 하고 싶었던 것도 해보고. 그렇게 한 번이라도 살면 좋겠다.”
“너는 육아휴직 쓰면 되잖아. 요즘에는 육아휴직 써도 회사에서 눈치 안 준다고 하던데.”
나는 예전부터 민우가 조금 쉬어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성실하게 달려만 왔던 인생을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풍경을 느낀다면 더 풍성한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야,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냐?”
무엇이 그를 그렇게 인내하게 만들었을까. 책임질 것 하나 없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시절의 그가 다시 보고 싶었다.
직원은 빈 접시를 가져가 마른안주를 다시 채워 가져다주었다. 손님들이 조금씩 빠지면서 직원들이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한 번은 쉬면서 살아온 시간을 정리해야 될 것 같지 않아? 지금 잘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반전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면서 작전을 다시 잘 짜야 후반전을 잘하지. 후반에 더 잘하려고 쉬는 시간에도 드리블 연습하고 슈팅 연습하면 후반전이 잘 되겠냐. 그러다 더 지치지. 혹시 연장전이라도 가게 되면 바로 퍼지는 거야. 게다가 지금은 연장전까지 살아야 되는 시대라 더 잘 쉬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