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속 인문학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것이 대충 보면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해내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패션과의 관련성은 딱히 없어 보이지만, 패션을 관통하는 속담 중 하나이다. 패션만큼 보이는 게 중요하고 전부인 거 같은 영역에서 과정과 노력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패션에서 빠질 수 없는 디테일에 대한 강조가 있기 때문이다. 패션에서의 디테일은 감히 프로포션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패션에서 타고난 프로포션을 가지고 대충대충 입어도 멋있다는 패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고난 프로포션만을 보고 멋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분명 패션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 누군가에겐 성의 없어 보이는 패션과 보통의 프로포션을 가지고 고도로 계산된 디테일만으로 멋있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패션이 재미있는 이유가 이것인데, 패션에서의 과정과 노력은 타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취향을 품은 이러한 디테일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누군가에겐 비춰지고 취향이 맞다면 꽤 멋진 패션이 된다.
패션 디테일에서 빠질 수 없는 영역은 단연 남성슈트가 있다. 슈트만큼 디테일에 집착하는 패션은 없기 때문인데, 슈트 중에서도 맞춤슈트는 디테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보통의 맞춤슈트라 하자면 높은 가격대에 원단만 선택하면 쉽게 만들어질 거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맞춤슈트를 진행했다면 높은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좋은 테일러를 만나도 결국 슈트를 입는 것은 테일러가 아닌 자신이기 때문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디테일을 직접 선택해야 하며 이는 수트가 잘나올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맞춤슈트가 패션디테일에 정점인 이유는 1cm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패션자체가 1cm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건 사실이지만, 맞춤의 경우 다른 영역과는 다르게 입는 당사자가 바로 체감하기 때문에 디테일에 무게를 둔다면 테일러나 입는 사람이나 쉽지 않은 과정이 된다.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모여 완성된 슈트는 프로포션을 무시할 만큼 완벽한 멋짐을 보여주지만, 타인의 시선에 이러한 완벽한 멋짐 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아쉽게도 반영되지 않는다. 그저 결과값인 완벽한 슈트를 입은 패션피플만이 남아 존재한다.
패션에서의 디테일은 어디에도 있다. 취향을 품은 디테일은 어떻게든 보여지게 되는데 이러한 디테일들이 모인다면 주변에서 옷 좀 입는 패션피플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디테일에만 너무 집착한다면 패션을 즐길 수가 없게 된다. 패션은 취향을 담아 자연스러워야 한다. 취향을 품지 못한 디테일은 그저 무게 감 없이 멋만 부린 요즘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된다. 패션은 디테일을 품어야 하지만, 디테일에 집착해선 안 된다. 이는 패션이 어려운 이유이자, 인문학적으로도 접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