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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opal Dec 23. 2019

하고 싶은 건 해야겠습니다.

좋아하는 게 많은데 뭘 어째

 '좋아하니까'


 누군가 그걸 어떻게 하게 됐어? 왜 하고 있어? 물으면 꼭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최근에야 여러 개의 일을 하기도 하고,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소위 '덕업 일치'인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사실 나에게는 10대 중반부터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필수적인 사항이라 생각했다.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한 편이라, 19살 때 적은 꾸깃꾸깃한 일기장을 열면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23살에 벤츠 차 사기', '25살에 00동에 집 사기', '27살에 부모님 집 사드리기' 등. 

 그 당시엔(어쩌면 지금까지도) 내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물질적 요소밖엔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온통 집과 차를 사는 계획뿐이다. 곧 19살의 나는, 내가 23살 때 성공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경력은 쌓이나, 대체적으로 1년 이상인 것들이 거의 없게 되고 일을 했던 직업의 수만 꾸준히 늘어갔다. 업종도 천차만별이다. 파티플래너, 헬스 트레이너, 마케터, 디자인 기획자, 창업자, 창업 실패자, 크라우드 펀딩 기획자, 창업 한번 실패해본 창업자, 창업 두 번 실패해본 창업자, 그리고 3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노마드 사업가.


 얼마 전엔 아는 대표님한테 전화가 왔다. 'N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젊은 대표가 00 모임에서 강연을 했으면 좋겠는데, 민 대표 혹시 성공 스토리 있어?'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성공 스토리 있으면 진작에 여기저기 다녔겠죠'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성공 스토리'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성공 스토리라. 조금만 기다려보세요(라고 말할 걸).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는 매우 어렵다. 주고 싶은 명함과 나를 소개하고 싶은 타이틀도 3개씩인데, 그렇게 되면 나의 '정체성'이 흐려진다. 대개 어느 하나에 특출 난 재능이 없어, 여러 가지들을 치고 있는 무능력자로 비치기도 한다. 약 3년 전, 마케팅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고 계신 한 지인 CMO분이 일을 함에 있어서 한 사람이 가져야 할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최근 그 분과 한 모임자리에서 만나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요 대표님, 지금은 그 '정체성 없음'이 트렌드래요.'

 아무리 트렌드라고는 해도, 여전히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럼 꼭 나를 한 가지 단어로만 표현해야 하나, 생각 들기도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도 여러 개일 테고, 심지어 성격도 여러 개인데. 직업은 왜 꼭 한 가지만 가져야 하냐 말이다. 


 예전엔 내가 좋아하는 딱 한 가지 만을 선택하는 것에 집중했다. 일찍 일을 시작한 만큼 일찍 성공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는데, 이왕 성공하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도한 욕심이었는지, 성공이라는 압박적 키워드 때문이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걸 찾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메모장을 열어 연필을 집어 들고 밤을 새워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짜내어 그것을 직업화해보기도 했다. 오죽하면 그렇게 이 세상에 없는 직업들을 나열해가며, 없는 직업을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압박해가며 완벽한 나의 미래 직업을 찾으려 애쓰는 동안, 무수히 많은 직업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어느 하나 내가 '이거다!' 할 수 있는 직업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거다!'가 마치 '유레카!'인 것처럼 나의 심장을 쿵 하고 자극하고,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야말로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평생직업인데. 글쎄다. 살면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정말 복 받은 것이지 않을까. 여하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기준들을 내가 그간 거쳤던 일들에 들이대다 보니, 그렇게 짧은 경력과 많은 직업수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그 엄격한 기준이 분리되어, 총 3개의 직업에 각각 33.3%씩 나누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여러 개의 일을 하다 보면 지속적으로 내 뇌가 자극되는 기분이 들어 일이 더욱 재미있어진다. 전혀 다른 분야들을 넘나들며 어제는 이런 사람이었다가, 오늘은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다. 결국 재미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나는 직업으로 삼았다. 

 10대 후반에 대학에서 과를 선택해야 했던 시간이나, 회사에서 특정 부서를 선택해야 했을 때, 여전히 누군가 나에게 '무얼 제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이 끌리는 것을 한 가지만 고른다는 것이 나는 어렵기만 하다.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 접근한다면 기획이면 기획, 마케팅이면 마케팅, 영업이면 영업.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해야만 할 것 같다. 비단 일 뿐만 아니라 취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나 스스로 우유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똑 부러지게 한 가지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무작정 나열한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돈하여 생각하지 못하도록, 굉장히 이기적인 답변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솔직한 답변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많은데 뭐 어째. 


 '여러 개'라는 것은 '정체성' 혹은 '똑 부러짐'과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어쩌면 나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에 대한 정체성도,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등으로 많이 나누어지는데 말이다. 


 N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회적 현상이라면 분명 사회적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불안함 때문일까? 고용 불안, 노후 불안 등의 이유일까. 아니면 정말 세대가 변하면서 갑자기 N개의 직업 성향을 갖고 있는 유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일까. 바보 같은 소리는 뒤로하고, 당연히 미디어와 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을 테다. 유튜브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크리에이터는 장난감 리뷰를 하는 8살 소년이라고 한다. 이제 돈을 벌고, 직업을 가지는 데에 나이도, 경력도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억만장자 8살 소년을 보고 있으면, 살짝 억울한 생각도 들 테다. 나보다 한참 어린 이가 나보다 한참 많은 돈을 벌고 있다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면서 우후죽순 많은 이들이 1인 크리에이터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와 직업이 생겨났다. 


 개인의 재능과 아이디어를 뽐낼 수 있는 시장이 생겼다는 것은 커다란 기회다. 참고로 나는 1인 크리에이터도 아니고, 심지어 유튜브를 잘 즐겨 보지도 않지만 분명 이것이 미치는 영향만큼은 어마어마하다는 데에 그 누구보다 동의하는 입장이다. 이것이 단순 유행처럼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직업을 꼭 한 가지만 가져야 한다는 것, 혹은 기존에 우리가 '직업'이라 생각했던 분야를 훌쩍 넘어 다소 이상한(?) 것을 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고로 나도 그 트렌드에 숟가락을 살포시 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직업만 여러 개일뿐, 무엇하나 잘되는 것이 없으면 하나만 쭉 파는 것이 제일 좋긴 하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여러 개의 것들이 곧 나 하나를 표현하는 정체성 그 자체가 되고, 나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강연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19살 때 적었던 성공의 기준은 차와 집 그리고 부모님께 드리는 커다란 선물이었지만, 현재의 내가 적는 성공의 기준은 분명 달라졌기 때문에, 아마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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