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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나들이

괜찮은 가게 두 곳을 다녀왔습니다.

by 마이크 타이프

수요일엔 가게가 쉰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쉰다. 매주 수요일 다른 밥벌이 일정이 있다. 오후엔 가게를 오픈할 순 있지만, 일정 핑계로 쉰다. 이런저런 밥벌이와 육아로 얽히고설킨 일상에서 벗어나 나 홀로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수요일 정오부터 저녁시간까지 약 6시간.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지하철을 탄다. 경복궁역에 내린다. 서촌을 가볼 참이다. 산책과 시장조사를 겸할 작정이다. 서촌, 묘한 소구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동네라 그런지 평일 낮시간에도 관광객이 많다. 인왕산을 향하는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그럴듯한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선 옥인길을 한 바퀴 돌아본다. 돌아보다 괜찮은 식당이다 싶으면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고, 여기 괜찮겠다 싶은 카페에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지금 쓰고 있는) 글 한편을 써야지.


내 가게와 규모가 비슷한 작은 카페들을 유심히 볼 참이다. 이들은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 곳인지, 어떤 디저트를 파는지 궁금하다. 왜 이 카페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왜 저 카페는 사람이 없는지도 궁금하다.


한집 건너 한집, 아니 한집 바로 옆에 한집이 죄다 카페다. 우후죽순이라더니, 이 동네에 비가 내리면 커피나무가 온 동네를 휘감지 않을까 싶다. 뭔 놈의 카페가 이렇게 많아. 나도 그런 놈들 중에 하나지만...


카페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한 곳, 단아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로 말쑥함을 뽐내는 곳, 직접 구운 베이커리로 무장한 곳, 어느 곳 하나 정성을 들이지 않은 곳이 없다. 내 가게를 들어오는 손님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내 가게는 어떤 특색이 있을까, 경쟁력이 있기는 한 걸까, 괜히 위축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산책인데 마음의 중량은 점점 증가한다.


옥인동 카페 골목을 한 바퀴, 두 바퀴 돌며 '들어갈만한 식당', '들어가 보고 싶은 카페'를 찾아본다. 결정이 쉽지 않다. 그저 괜찮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괜찮은' 카페에서 한두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건데.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선택장애 증상이 심해진다.


다시, 어깨를 두어 번 털어본다. 무겁고 복잡한 '자영업자'의 사고회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이랄까. 별생각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가게들을 둘러본다. 느낌 가는 곳으로 가자.


이럴 땐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이나 네이버 리뷰 등을 살펴보겠지. 이 수많은 선택지 중에 내 소중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당연히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겠지.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나는 오늘만큼은 인터넷 도움을 받지 않기로 한다. 내 느낌과 직관을 믿는다. 그리고 나의 '촉'은 꽤 잘 맞는다.


오후 1시 30분,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각, 식당들이 조금은 한산하다. 중국집과 베트남 음식점 사이에 있는 일본식 돈카츠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산책을 돌며 몇 번 스쳐 지나갔는데 볼 때마다 손님이 별로 없어 의아했다. 왜 이 집은 다른 식당에 비해 손님이 없는 걸까?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야외 배너 사진 속 음식들도 맛있어 보이는데. 그 이유를 딱 보고 알아야 '장사의 신'일텐데, 아무리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네이버리뷰가 별로 없거나 평가가 안 좋나?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해보고 싶지만 참는다. 내 촉을 믿어보자.


돈카츠집 문을 여니 여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나를 반기며 메뉴판을 내민다. 이분은 정말 내가 반가울 거다. 텅텅 빈 매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주인의 마음을 내가 모를 리 없다. 초조하고 착잡하고 불안하고 의기소침해지는 시간을 견디다 보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메뉴도 개발해 보고, 설거지도 해보고, 오븐도 청소해 보고, 분주히 움직여보지만 그래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결국 힘이 빠진다. 손님이 후한 리뷰(review)를 남기든 혹평을 남기든 일단 손님을 봐야(view) 힘이 생긴다.


여주인이 내온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메뉴를 살펴보다 별다른 고민 없이 '추천메뉴'라고 표시된 '데미카츠'를 주문했다. 그리고 가게를 둘러본다. 비좁은 가게지만 깔끔했다. 중앙에 벚꽃나무 장식이 있고, 테이블 사이사이에 발이 쳐져 있는, 특이할 것 없는, 그렇다고 딱히 흠잡을 만한 곳은 없는 일본 돈카츠집 인테리어다.


매장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식사가 나왔다. 큼지막한 돈카츠 세 덩어리가 나왔다. 제법 먹음직했고, 실제로 맛이 있었다. 맵거나 짜지 않고, 담백한 데미카츠 소스의 맛도 좋다. 내 촉이 틀리지 않았구나.


이 정도 맛이면 훌륭한데 왜 손님이 별로 없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딱히 다양한 이유랄 게 없을 수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그게 참 어렵다. 사람들을 사로잡을만한 그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게 그만큼 어렵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며 끝인사로 "잘 먹었습니다. 돈카츠 맛있네요."를 남긴다. 주인이 밝게 웃으며 답한다. 고맙습니다. 주인은 나의 리뷰가 정말 고마울 거다. 여기 좋네요, 음식 맛있네요, 또 올게요, 이런 손님의 한마디가 가게주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내가 모를 리 없다.


돈카츠집을 나와 미리 점찍어둔 2층 카페로 향한다. 수많은 카페 중에서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그 이유가 아주 뚜렷하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목적은 있었다. 편안한 자리에서 스마트폰과 휴대용 키보드를 펼치고 차분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곳 2층 카페는 그럴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물론 이곳도 미리 인터넷검색을 통해 알아보진 않았다)


이 카페도 좋았다. 무엇보다 2층에 자리 잡은 객실이 마음에 들었다.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는지 제법 높은 지붕과 서까래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닫이 문이 달린 작은 공간에 빈티지 오디오를 배치해 놓아 고풍스럽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왠지 인스턴트식품을 놓아야 할 것 같은 가구들이 아니라 원목 테이블과 빈티지 소파로 객석을 꾸며놓은 점도 마음에 든다.


공간 전체의 조도를 낮추어 어둡지만 답답하지 않아 코지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들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곳곳에 빈 테이블이 있어 조금 오래 머물러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오손도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손님들이 있어 적막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이곳 카페의 생태계에서는 살기 좋은 환경과 적당한 개체수가 유지되고 있었다. 내 가게의 생태계도 이런 생태계였으면 좋겠네!


주문한 에스프레소를 거의 마셨다. 글을 마치기 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 가게가 더 좋은 가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가게 매출을 더 올릴 수 있을까, 앞서는 욕심은 접어두고, 어떻게 하면 그야말로 '더 좋은 생태계'가 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또다시 시작되지만 이것도 일단 접어두고... 일단 좀... 쉬자.

서촌의 밤. by hazydrawing




후설.

글을 마친 후 내가 방문한 가게들을 네이버로 검색해 봤다. 돈카츠집은 원래 밤에 운영하는 '이자카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 낮 손님이 상대적으로 적은 거였나, 싶다. 카페는 직접 만든 타르트와 편안한 분위기, 서촌 정서와 잘 맞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다. (네이버 리뷰수가 무려 1000개가 넘네!) 리뷰수가 많다고 반드시 좋은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은 대부분 리뷰수도 많다'라는 이 명제는 - 필요조건인지 충분조건인지, 삼단논법인지 언제나 헛갈리지만 - '참(truth)' 가능성이 크다.


방문한 곳들:

로쿠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가길 24 1층


https://naver.me/GqO42Umo


통인스윗카페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10


https://naver.me/GOuQep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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