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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갈이

화분이 시들할 땐 둘 중 하나

by 마이크 타이프

카페/와인바를 개업한다고 하니 주변의 지인들이 크고 작은 축하 화분을 보내 주었다. 가게의 아늑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위해 화분이 꼭 필요했는데, 고마웠다.


지인들이 보내온 크고 작은 화분들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심겨 있었다. 일단 대형 화분 3개를 소개한다: 제롬펫이라고 하는 극락조 비슷한 신품종, 뾰족한 잎사귀가 무성해 이국적 멋을 뽐내는 아레카야자수, 자태가 제법 우아한 뱅갈고무나무.


중형 화분도 소개하자면, 잎모양이 특이하고 예뻐 인기가 많은 몬스테라, 키우면 돈이 된다는 금전수, 물 안 줘도 오래 사는 스투키. 어떤 걸 보내 줄까 고민한 지인들 정성의 색깔이 달랐는지, 각기 다른 품종의 식물들을 보냈다.


그런데 개업 3개월을 넘길 때쯤 좋지 않은 징후가 나타난다. 가게 여기저기에 배치해 놓은 화분들 중 대형 화분에 심어진 식물들이 모두 시들시들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평소에 화분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 정성스레 잘 키워 웬만하면 화분을 잘 죽이지 않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매일 환기도 시키고, 물도 정기적으로 주었는데. 낮에 볕 드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 햇살을 많이 담은 맑은 날에는 햇살지기에 화분들을 옹기종기 모아 햇살 샤워를 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하나둘씩 잎사귀를 떨구거나 잎사귀가 말라갔고, 그런 식물들 때문인지 가게 분위기도 울적해지는 것 같다.


화분의 식물이 시들시들하면, 선택은 결국 둘 중 하나다. 시들시들한 식물을 좀 더 정성스레 돌보고, 흙도 갈아주고, 영양제도 주면서 어떻게든 살려보던가, 아니면 과감하게 뽑아 버리고, 싱싱하고 튼튼한 식물로 바꿔주던가. 다른 선택지는 딱히 없다. 둘 중 하나다.


나는 잎사귀가 달랑 하나 남은 제롬펫과 잎사귀 끝이 모조리 말라버린 아레카야자수는 아예 화분에서 뽑아버리고 새로운 식물을 심어 보기로 했다. 꼬락서니(?)를 보니 살려내긴 글렀다는 판단이 들었으니까. 시들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선방해주고 있는 벵갈나무는 그대로 살리고 흙만 갈아주기로 했다.


화분갈이 전문 농장을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어떤 품종을 새롭게 심을지 상담도 받았다. 화분 두 개에 새로 심을 식물로는 해피트리와 크루시아를 선택했다. 둘 다 관리가 쉽고 잘 죽지 않는 품종이라고 했다.

몬스테라와 해피트리(왼쪽사진)/크루시아와 벵갈나무(오른쪽 사진)

며칠 후 약속 시각에 맞춰 가게를 찾아온 농장의 사장님은 가게의 화분들을 번쩍 들어 1층 야외로 옮겼다. 후미진 길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분갈이 작업을 시작했다.


화분의 흙을 뒤엎자 그 속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스티로폼이 나왔다. 농장 사장님의 말에 따르면, 보통 선물용으로 배달되는 화분 속에는 스티로폼이 가득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화분 아랫부분에 스티로폼만 있으면 흙이 부족해 식물들이 뿌리를 견고하게 내리지 못하고 결국 시들시들 죽는다.


화분 무게를 줄여 배달을 좀 더 쉽게 하려고 약간의 스티로폼을 화분 속에 넣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스티로폼의 양을 보니 이건 좀 너무 했다 싶다.


농장 사장님은 후다닥 화분 세 개의 흙갈이를 끝냈다. 새로 터전을 잡고 살아갈 해피트리와 크루시아를 화분에 심었다. 뱅갈고무나무는 시들한 가지들 몇 개를 잘라내고 흙갈이를 끝낸 화분에 다시 심었다.


작업을 끝낸 사장님이 간단한 조언을 남긴다. 식물은 딴 거 없어요. 물 정기적으로 주고, 햇빛 가끔 쬐어주고, 냉해 입지 않게 실내 온도 적절하게 맞춰만 주면, 웬만하면 다 잘 자라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알죠, 근데 그렇게 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화분 속 식물이 아니라 내 생활의 결과가 시들시들할 때도 있다. 가게 매출이 시원찮고, 홍보를 위해 시작한 인스타그램의 조회수도 시원찮다. 뭐, 이럴 때도 선택은 둘 중 하나 아니겠나. 인스타그램을 더 잘해보던가. 아니면, 차라리 네이버 블로그에 더 집중해 보던지.


그런데 그 무엇을 선택하든 몸은 건강하자고 결심해 본다. 흙 속 스티로폼을 빼내는 것처럼 몸 안의 독소도 좀 빼고, 건강한 음식으로 식사도 좀 챙기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자고.


삶 속에 몸이 있는 게 아니라 ‘몸’ 속에 삶이 있는 거니까.


건강한 몸이 있어야 뭘 하든 할 수 있지 않겠나...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일어나’를 열 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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