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시간 엄수, 이게 은근 어렵다
(낙서카페/와인바를 운영하는 사람의 일상을 담은 드로잉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뛸까 말까
가게 오픈 시각, 오전 10시. 지난밤 가게 마감을 새벽 3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한 시각은 새벽 4시.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어난 시각은 오전 9시가 훌쩍 넘었다.
가게 오픈 시각까지 20분 정도가 남은 셈.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켜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왔다. 다행히 가게는 집에서 멀지 않다.
오전 10시 3분 전, 가게까지 횡단보도 두 개를 남겨 놓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가며 앞을 보니 그중 첫 번째 횡단보도의 신호는 벌써 파란불로 바뀐 지 시간이 좀 지난 것 같다. ‘9’. 빨간 불로 바뀔 때까지 9초 남았다는 얘기다. 지금 건너지 않으면 가게에 10시 넘어 도착할 것이다. 몸도 뻐근한데 뛰어야 한다. 싫다. 괴롭다.
하지만 지금 뛰지 않으면 오픈 시각을 넘긴다. 아무리 그래도 오픈 시각이 지나 가게에 도착하는 건 괜히 찝찝하다. ‘아냐, 어차피 오전 10시엔 손님이 없어.’라는 생각이 나를 위로한다. 뛸까? 말까? 여기서 뛰어서 횡단보도 진입지점까지 도달하면 9초가 다 가버릴 거 같은데... 뛰어? 말어?... 그래, 그냥 뛰자.
일단 성공이다. 횡단보도 진입지점에 도달했을 땐 3초가 남아있었고, 냅다 뛰어 횡단보도를 중간쯤 건넜을 때 신호등은 이미 빨간불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신호대기 중이던 차들이 터덕터덕 뛰는 중년 남자가 안쓰러웠는지 출발을 미루고 내가 건널 때까지 기다려준다.
가게에 도착해 숨을 고른다. 오픈 시각, 10시 3분. 늦었다. 역시 10시 정각에 문을 두드리는 손님은 없었지만 그냥 좀 아쉽고, 약간 짜증이 난다.
다음에 또 뛰어보자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또 뛰겠지. 물론 애초에 일찍 일어났더라면 뛸 일도 없겠지만, 일상의 방해는 반복될 것이고, 나는 종종 그 방해에 무너질 것이고, 늦잠을 잘 것이며, 횡단보도 앞에서 9초 남은 그린라이트를 보며 뛸까말까 또 고민할 것이고, 결국 또 뛰어보겠지. 그래도 좀 빨리 뛰어보면 10시 정각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 알 수 있겠지.
다시 한번 해본다는 것, 이건 좀 피곤한 일이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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