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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엔 잡지

케이크가 먹는 디저트라면 잡지는 보는 디저트

by 마이크 타이프

살까말까, 고민하다 종이잡지 몇 권을 구입했다. 잡다한 일을 하거나 뚜렷한 맥락없이도 쉬어 갈 수 있는 카페에 ‘잡지’가 없다는 건 좀 허전한 일이다. 카페에서 케이크가 먹는 디저트라면 잡지는 보는 디저트랄까.


이번에 구입한 잡지는 총 세 권이다.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 <GQ>, 브랜드 탐사 전문 잡지 <B>, 그리고 우연찮게 알게 된, 마케팅 관련 잡지 <P&P Magazine>. 거치대에 딱, 세워두니 카페가

한결, 뭐랄까, 편안해지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나는 잡지를 참 좋아한다. 한 달에 서너권은 오며가며 읽는 편이다. 요즘 세상에 잡지를, 그것도 종이잡지를 시간내어 읽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만은 이런 마이너한 취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졌다가도 어느 순간에 다시 몸에서 스며 올라와 나도 모르게 잡지를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별다른 의지 없이 무언가를 반복해서 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평생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취향임에 틀림없다.’

책 <일의 감각>에 실린 인터뷰 내용 중에서 (오히려 저자가 아닌) 인터뷰어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디자인의 브랜드들을 보면,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디지털 세상에 많이 들어와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많이 빠져 있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 잡지 또한 그렇다. 종이를 만지는 촉감을 대신할 것이 디지털에서 탄생할 것 같지는 않다.


카페에 잡지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이유를 굳이 찾아야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잠시 생각해보니 두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온다.

by hazydrawing


1. 잡지가 주는 컬러풀한 에너지가 좋다.

우선 잡지가 주는 에너지가 좋다. 특히 패션잡지나 라이프스타일 관련 잡지에는 멋진 것들이 많다. 멋진 것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값비싼 브랜드, 세련되고 독특한 상품들의 광고 사진이 가득하다.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최소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스토리가 넘친다. 페이지를 넘기며 이런 사진들과 기사들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래,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나도 멋지게 살아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불타오르는 의지, 단단한 결심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위로’같은 생각이라 담백하다. 마치 피곤해서 마른 세수를 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슬쩍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야, 힘내, 너도 멋지게 살면 되지,” 가벼운 위로와 함께 시원한 병맥주 한 병을 건네는 느낌이랄까.


그저 좋은 것들을 보면서 받는 기분 좋은 에너지, 멋지고 세련된 글과 사진, 그림들의 총합이 담아내는 어떤 느낌들. 그 느낌의 합. 이로부터 디퓨저처럼 퍼지는 에너지가 산뜻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수많은 광고 지면이 기업광고에 기생하며 생존할 수밖에 없는 잡지 산업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기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던가.

by hazydrawing


2. 유익하고 유려한 잡지 속 텍스트는 신선하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에는 거의 예외없이 멋진 텍스트들이 함께 실린다. 일상의 일부를 보다 세련되고 가치있게 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들이 세련된 레이아웃과 함께 잡지 지면에 실린다.


예컨대 GQ의 이번 2025년 3월호에 실린 <GUIDE: 지큐가 안내해드릴게요>라는 섹션에 어떤 글이 실렸나 한번 보자. ‘상황별 자동차 구매 가이드,’ ‘새내기 작가를 위한 출판 전문가들의 안내서,’ ‘파인 다이닝 비기너를 위한 다정한 안내서’와 같은, 그야말로 더 윤기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글들이다.


잡지에 실리는 이런 칼럼 형식의 글들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텍스트들의 톤과 매너가 일품이다. 마치 조말론 향수를 맡고 있는 것처럼 텍스트에서 세련된 향과 리듬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시사칼럼보다 위트 넘치는 문체와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은, 매끄럽고 톡쏘는 문장들이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글을 몇 번이라도 써본 사람들은 이렇게 글을 ‘멋지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뉴스나 신문사설의 무겁고 딱딱한 글, SNS의 자극적인 글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실린 텍스트가 담고 있는 경쾌한 리듬과 실키한 느낌을 한번쯤 즐겨보시길.


오전 10시 카페를 오픈하고, 가게를 정돈하고 아이스커피 한잔을 테이블에 놓는다. 그리고 잠시, 라이프스타일 잡지들을 책장에서 꺼내어 펼친다. 역시 카페엔 잡지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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