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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톡스 브런치

자영업자의 기쁨과 슬픔

by 마이크 타이프

속이 좋지 않다. 어제 영업을 마친 늦은 밤, 괜한 마음이 동하여 아내와 소맥을 마셨다. 괜한 마음이라기보다는 어젯밤 손님이 별로 없어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안주는 아내가 좋아하는 곱창이었는데, 이게 문제였다. 나름 곱창요리로 유명한 맛집이라 해서 갔는데, 아니었다. 아니, 최악이었다. 원래 살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곱창이라는 부위 자체를 안 좋아하는데 아내는 또 그 기름지고 야릇한 식감이 좋다며 곱창을 좋아한다.


나는 사실 좀 나쁜 남편이라 아내의 음식 기호 따위?는 개의치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것 위주로 외식 메뉴를 정하는 편이다. 그리고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 내가 택한 메뉴와 식당에 아내도 상당히 흡족해한다. 그런데 어제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곱창 먹으러 가자'는 아내의 요구를 흔쾌히 거절하지 못하고, 순순히 아내가 인도하는 곱창집으로 갔다. 아내가 종종 애용한다는 식당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정말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이 기괴했다. 7만 원이 넘는 음식값을 내고 나서며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거봐, 이제 다시는 네가 먹자는 거 안 먹어. 이제 진짜, 다시, 내가 결정한다, 외식은."


어젯밤의 괴로운 외식 탓에 속이 좋지 않다. 그래서 가게 문을 열기 전 부리나케 헬스장을 찾았다. 땀이라도 좀 흘리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평소보다 조금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 오전 9시가 넘어 9 to 6 직장인들이 모두 빠져나가니 헬스장이 한산하다. 자영업의 기쁨은 이런 시간적 소외에서 오는 것 아닐까. 남들 쉴 때 못 쉬지만 남들 일할 때 쉴 수도 있으니 매사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스테핑 기구로 몸을 풀고 벤치프레스와 덤벨 컬, 시티드로우를 섞어 5세트 정도 반복했다. 가슴과 이두, 등 부위 운동을 함께 진행하는 일종의 콤비네이션 방식의 운동이다. 하루 30분이라도 운동은 빼먹지 않고 매일 하려고 노력한다. 생활이 불규칙하고 일찍 잠을 잘 수 없는 자영업자에게 체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운동과 샤워를 마치고 훨씬 가뿐해진 몸으로 가게에 오니 오픈 20분 전이다. 어젯밤에 가게 공간을 모두 정리해 놓고 갔기에 오픈을 위해 딱히 할 일은 없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배고픈 건 못 참는 나에게 아침식사를 거르는 건 끔찍하다.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으로 황폐화된 위장과 대장을 다스리기 위해 담백한 식사거리를 마련했다. 삶은 닭가슴살, 양상추, 토마토, 포도, 호밀빵 한 조각, 그리고 유기농 주스 한잔. 이것저것 접시에 담고 보니 양이 꽤 된다. 그래도 나는 안다, 다 먹을 거란 걸.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자영업자는 특히 끼니 거르지 말고 제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매일같이 컵라면에 편의점 도시락을 가게 마감 후 밤늦게 먹는 패턴을 반복하다 병이 날 테니.


브런치 메뉴가 꽤나 호사스럽지 않은가. 건강하고 고급스러운 식사지만, 사실 여기에는 좀 슬픔 사연이 있다. 이 야채와 과일들은 모두 내 가게에서 파는 안주에 들어가는 것들인데, 유통기한이 다 되어 가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재료들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내가 먹는다. 야채, 치즈, 과일 등 신선식품은 일명 로스율이 높은 식재료들이다. 예상했던 손님보다 적은 수의 손님이 오거나 며칠 동안 유난히 안 팔리는 메뉴가 있거나 하면 그 메뉴에 들어가는 식재료들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힘들어 팔기도 버리기도 아까운 상황이 발생하기에,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비용절감을 위해 내가 먹는다. 다행히 먹으면 몸에 좋은 것들이라 기쁜 마음으로 먹으려 노력한다.


가게 안 특히 햇살이 잘 비치는 자리에 접시를 놓았다. 나는 이 자리를 햇살지기라 부른다. 햇살지기는 햇살을 받는 쪽이라는 뜻인데 정말 이 자리는 햇덩이를 한 사발 들이부은 것처럼 햇발이 가득하다.


독서대에 책 한 권도 꽂았다. 최민석 작가의 <마드리드 일기>란 에세이인데, 작가가 교환 작가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2022년 두 달간 마드리드에 머물며 쓴 책이다. 왠지 모를 폭신한 식감이 느껴지는, 글맛이 제법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나긋하게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홀로 앉아 책을 읽으며 브런치를 즐기는 것, 이것은 자영업자의 기쁨인가, 슬픔인가.


브런치 타임을 즐기다보니 어느새 오픈 시각인 10시. 서둘러 음식 접시를 테이블에서 치운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내려 잔에 따른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책을 좀 더 읽는다. 10시 30분, 아직까지 손님이 오지 않는다, 는 사실이 슬프면서 슬프지 않다. 손님이 오지 않는 덕분에 오랜만에 느긋하게 책을 즐기고 있으니 그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카페 사장'의 사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시간을 마음껏 누리다 보면 월말엔 쓰디쓴 매출액 맛을 보겠지. 상상만 해도 싫다. 어제 먹은 느끼한 곱창요리까지 갑자기 생각나 짧은 몸서리를 쳐본다.


딱 10분만 더, 이렇게 햇살 가득한 테이블 앞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다가 손님들이 우르르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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