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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의 본질

나도 굿즈 한번 만들어볼까?

by 마이크 타이프

와인바 오픈 전 청소를 하는데 - 아니 그전부터 - 이런저런 고민과 구상이 블렌딩 되어 머릿속이 다소 혼란스럽다. 매달 매출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 증가 속도가 너무 느리다. 창업 후 6개월이 되는 달에는 얼마 이상의 수익을 남기겠다고 '계획'했지만 6개월이 된 이 시점에서 그것은 아직 '다짐'에 머물러 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상해 본다. 시음이벤트, 전단지, SNS 홍보 등이 떠오른다. 얼마 전 들른 문래 창작촌 내 어느 카페에서는 연필이며, 책갈피 같은 일명 '굿즈(goods)'를 만들어 메뉴와 끼워 팔던데 이런 아이디어도 괜찮아 보인다.

문래동 어느 카페에서 받은 연필 굿즈

흠, 그래, 나도 굿즈 한번 만들어볼까?책을 읽으며, 그림을 그리며 낙서를 시도해보는 카페/와인바를 표방하고 있으니 그럴듯한 종이노트를 굿즈로 제작해볼까?

가게 굿즈를 떠올리며 그려본 Controll사의 가죽노트

문득 정리함에 든 어느 굿즈가 떠올라 꺼내 본다. 며칠 전 가게에 왔던 단골손님이 "오늘 영화 '야당' 보러 갔는데 이런 굿즈를 주더라고요."라며 건네준 것이다. 순간 괜히 심통 궂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야, 줄려면 공짜 영화 티켓을 주던지, 이 따위 굿즈나 주고...' 하지만 "사장님이 언젠가 굿즈나 홍보 등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던 것 같아 챙겨 왔다"는 그의 말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순간 교차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당' 굿즈는 세 가지 종이로 만든 무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빨간 잉크로 라이터가 그려진 티켓, 다른 하나는 빨간색 플라스틱 렌즈를 장착(?)한 종이 선글라스와 손바닥만 한 크래프트지를 반으로 접은 또 다른 티켓. 영화를 안 본 나로서는 딱히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진 않는다. 이런 걸 굿즈로 받으면 사람들이 좋아할까(feel good?) 글쎄다, 싶다.


마침 오늘자(2025.05.08) 신문에 '굿즈' 관련 기사('영화의 감동 간직한다...'흥행 필수템' 굿즈')가 실려 있어 찬찬히 읽어본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영화 흥행과 홍보, 관람객 증대에 '굿즈'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영화 표 가격 상승, OTT의 영향력 확장 등으로 줄어든 관객의 발걸음을 다시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영화를 여러 차례 보며 관심도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N차 관람객의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는데 이들의 재관람을 유도하는 것도 바로 굿즈다. 영화 굿즈는 기획 콘셉트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된다. 상영관별, 개봉주차별, 콜라보 굿즈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영화관에서 제공하는 이른바 '시그니처 굿즈'로는 티켓 혹은 카드 모양의 지류 굿즈가 대표적이다.

신문에서 지적한 '굿즈'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다. 영화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에겐 관람 후 여운을 남겨주는 일종의 콘텐츠다. 관련 굿즈를 수집하려는 팬도 생기고 있다.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살짝 과시할 수도 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한정판이라 희소성도 생겨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니까 굿즈는 경험과 과시, 희소성이란 키워드로 집약되는 홍보물인 것이다.

신문을 읽고 단골손님에게 받은 굿즈를 다시 살핀다. 알고 보니 라이터, 빨간색 선글라스 등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전하는 소품들이었구나. 오리지널 티켓이라 불리는 지류 굿즈가 가장 흔히 유통되는 영화 굿즈구나. 의미를 알고 다시 보니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 이런 굿즈를 받으면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다시, 내 가게와 '굿즈'를 연계해 생각해 본다. 굿즈를 떠올리면 항상 이런 모순이 동반된다: 굿즈를 통해 유명해지느냐, 유명해지면 그때서야 굿즈가 효과를 발하는 것이냐... 스타벅스의 굿즈를 사는 이유는 굿즈가 좋아서가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의 위상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또 작고 이름 없는 카페들도 굿즈 만들어서 홍보도 하고 추억거리도 선사해 주어야 브랜드 이미지도 구축하는 거 아니겠나.

영화 '야당'의 지류 굿즈


굿즈는 가게가 아닌 소비자를 위한 것

모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문득 굿즈라는 이름을 다시 360도로 돌려본다. 굿즈, 그러니까 영어로는 goods. 재화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굿즈는 소비자에게 좋은(good),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그 무엇 아닐까. 굿즈를 만들까 말까의 고민은 내 가게의 위상, 유명세, 매출 증대 효과, 홍보효과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구먼. 우리 가게에서 만든 굿즈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좋음'을 선사할 것인가, 바로 그 지점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머릿속이 좀 더 명쾌해지면서 동시에 갑갑해진다. 내 가게가 유명한 가게든 아니든 굿즈는 그냥 만들면 된다. 그런데 어떤 굿즈가 소비자들에게 굿(good)한 거냐, 이건 좀 더 고민이 필요하겠다. 즐거운 여운과 경험을 남겨줘야 하고, 소장 가치와 희소성이 있으면 더 좋다. 굿즈를 선물하기 이전에 가게 자체가 좋은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다른 가게들도 다들 그렇게 하니까, 흔한 굿즈에 가게 이름 새겨 선물하는 건 그야말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조악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많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환경오염만 가중시킬 뿐이다. 고객 만족, 말이 쉽지 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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