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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기술

타인의 무성의한 응원과 무관심, 그것들의 대단함

by 마이크 타이프

비가 주룩주룩 오는 어느날 밤, 중년의 남자가 홀로 와인바를 찾았다. 마침 나도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고 손님은 말동무를 원했기에 우리는 별다른 주저함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중년 남자는 바의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기분좋은 코멘트를 해주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 아직 이 와인바가 홍보가 덜 된 것 같네요. 혹시 유튜브 하세요?

나는 가게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유튜브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대답은 곧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영상시대라는데 뭐라도 찍어서 올려야 되나 고민 중"이라는 고백으로 이어졌다.


중년의 남자 손님은 응원인지 격려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해주었다.

- 그냥 아무 거나 찍으세요. 고민할 게 뭐 있어요. 여기 분위기도 좋은데 그냥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녹화 버튼 누르고 사장님이 아무 이야기나 해보세요. 그리고 꾸준히 올려봐요.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한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취기가 올라온다며 집에 간다고 하면서 결제를 하며 나에게 '유튜브 시작'을 재차 종용했다.

- 잘하실 거 같은데 무조건 해보세요. 다음엔 유튜브 통해서 사장님 뵐게요. 응원합니다.


손님이 떠난 후 홀로 남겨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진짜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아니 '유튜브나'라니, 유튜버로 성공한다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인가. 유튜브나라니, 이 얼마나 엉성한 다짐인가? 그나저나 진짜 해볼까? 왜 할까 말까 고민을 반복하는 걸까? 생각이 괜시리 복잡해진다.


그때 마침 단골 손님인 고교 동창 친구와 와인바를 찾았다. 내친 김에 유튜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는 이참에 신중하게 유튜브 시작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논의된 고민과 해결책은 대충 아래와 같다.

1. 당장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

--> 당장의 이익이 보장되는 일도 있나? 그런 걸 원한다면 일용직 일을 하거나 그냥 월급받는 회사를 다녀야지. 아니면 주식 단타를 해보던가. 그런데 주식 단타는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당장의 커다란 손해를 안겨줄 수도 있다.

--> 시작하자마자 대박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더냐? 첫술에 배부를까.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자. 당장 큰 비용이 나가는 게 아니라면 일단 시작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무자본, 작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보는 게 낫다. 어차피 대박은 불확실, 아무 것도 안하면 대박은 불가능, 시작해서 큰 손해 볼 거 아니면 일단 해보는 게 낫지 않나.


2. 유튜브 영상은 촬영에서부터 영상 편집, 자막 작업 등 후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 요즘 AI 편집 프로그램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후작업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던데 한번 알아보자.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만 투입하는 방향으로 진행해보자.


의논 도중 문득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걸 일단 동영상으로 찍어나 보자"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빨간색 영상 녹화버튼을 눌렀다.


3. 어떤 주제를 찍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가뜩이나 '영상 공해'가 가득한데 어떤 콘텐츠가 유익할까? 어떤 컨셉의 영상이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 그걸 우리가 왜 고민하나. 그걸 어떻게 아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는 그 사람들이 아는 것이니, 우린 단지 콘텐츠를 제작, 제공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쓸데없이 자극적이거나 비윤리적 내용만 다루지 않으면 된다. 일단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내용만 생각해보자. 좋고 싫고는 우리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결정할 몫.


4. 유튜브를 통해 소위 '얼굴 팔리는 게' 좀 마음에 걸린다.

--> 괜찮아. 어차피 처음엔 아무도 안봐. 나중에도 아무도 안 볼 가능성이 더 커. 그럼 얼굴 팔릴 일도 없는 거 아니야? 얼굴 많이 팔리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유명해지면 좋은 거 아니야? 처음에 사람들은 어차피 무관심하다. 오히려 무관심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유튜브 한 편 찍었는데 100만명의 사람들이 악플을 단다고 생각해봐. 어디 무서워서 영상 찍을 수나 있겠어? 100만명이 좋다고 달려들어봐. 부담 되서 하고 싶은 말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서로 얘기하며 생각을 정리해보니, 유튜브를 시작하지 않을 이유는 별로 없었다. 나는 이야기 도중에 녹화를 시작했던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편집해 와인바 이름으로 개설해놓았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다.


할까 말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때 누군가의 진심어린 응원과 사람들의 큰 관심이 도움이 될까? 누군가의 조금은 '무성의한 응원'과 시작하든 말든 안중에도 없는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 도움이 될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말하자면, 시작의 기술은 다음의 삼무(三無)에서 나온다: 시작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없어야 하고(무비용),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야 하며(무관심), 생각이 없어야(무념무상) 한다. 삼무가 갖춰지면 일단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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